+. 평화


1. 약한 믿음의 기도는 확실한 안전을 위하여 현재 상황의 구체적인 사정들에 집착하도록 합니다. 약한 믿음의 기도는 단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여러 소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기대하는 것 같은 천진스러움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특정한 소망과 열망들이 그대로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도가 들어지지 않을 때, 곧 소망한 선물을 얻지 못하게 될 때 실망하고 심지어는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약한 믿음의 기도가/ 터무니없는 근심과 두려움을 수반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약한 믿음으로 건강, 성공, 발전 그리고 평화 등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요청을 드리게 되고, 기대에 상응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버림받은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기도에서 우리의 청원기도는 어떤 식으로든지 얻고자 청한 일이나 사물을 얻는 데에 있고, 그 소망을 들어주거나 들어주지 않을 대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지만 선물만 받고 나면 위엄 있는 거룩한 사람이 두려워 재빨리 도망치는 어린이들과 같습니다. 그 아이들은 선물을 받는 것 외에는 긴 수염의 키 큰 노인과 아무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모든 관심은 선물에 집중되어, 선물을 주는 사람은 염두에도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할 때, 영적인 삶은 원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생활의 형태로 격하되고 맙니다. / 다가올 미래를 스스로의 의지로 꾸려 가는 것에 너무 집착함으로써, 약한 믿음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것들을 외면합니다. 우리는 구체적이지 못한 약속들을 싫어하고, 미래 속에 숨겨진 아직 보지 못한 상황들을 의심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약한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는 기대함도 없이 기도하는 셈입니다. 약한 믿음의 기도는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인색하며, 작은 모험에도 당황해합니다. 거기엔 절망할 위험도 희망할 기회도 없습니다. 작은 것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난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2. 반면에, 희망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내 앞에 열려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미래에 대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오늘, 내일, 두 달 후, 아니면 일 년 후 나에게 닥쳐올 모든 것에 대해서 열려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두려움 없이 일을 시작하고, 당장에 잘 되지 않을지라도 꾸준히 해 나가며, 자신이 하는 일에 신뢰감을 가지는 것, 바로 그것이 희망을 가진 삶의 모습입니다. / 우리가 희망을 지니고 살아갈 때, “어떻게 소망들을 이루어 갈까?” 하는 걱정에 얽매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받을 선물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그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아직도 많은 청원이 들어 있을지라도, 결국 문제는/ 소망이 실현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그분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나타내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기도는 어떤 보장도 요구하지 않고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어떤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다른 이가 좋은 것만을 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희망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는 열린 마음을 포함합니다. 그 약속이 언제 어디서, 혹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게 될지 모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루 종일 어린이는 온갖 것을 어머니에게 요구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은/ 그가 청한 것을 얻게 될지의 여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머니가 그들에게 유익한 것만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못 얻을 때면 고집을 부리거나 일시적으로 반항도 하지만, 결국에는 어머니가 자신들을 위해서 좋은 일만 한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기도할 때도 여전히 많은 것을, 특히 좋은 날씨나 봉급 인상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것들을 간청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체성은 우리의 기도가 진실된 것이라는 하나의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믿음, 희망, 사랑, 자유, 행복, 만족, 겸손을 청하기만 할 뿐 그것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려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할 때 이러한 구체적 청원들은/ 사랑을 우리와 나누시려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는 방법이 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기도할 때에만 죽음의 울타리를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기도할 때, 죽은 뒤의 세계는 어떨까, 천당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될까 하는 것들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희망으로 기도할 때, “그분은 신실하며 모든 약속들을 지키시는 분이시다.”라는 확신한 믿음으로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 희망은 새로운 자유를 주는데, 그 자유는 우리가 낙담하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능력을 갖게 합니다. 희망이란, 절망 가운데서 살아감을, 암흑 속에서 계속 노래함을 뜻합니다. 희망하는 것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고, 내일을 신뢰하는 것이며, 잠들었다가 해가 떠오르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육지를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이의 눈 속에서 너 자신이 이해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청원기도가 희망의 기도일 때, 그것들은 또한 감사기도가 되고, 찬미기도가 됩니다. 숱한 청원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크신 호의를 신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방법이 됩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기도할 때마다 삶을 오로지 하느님의 손에 내맡기게 되고,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희망으로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들과 이루어지지 않을 채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하느님의 숨겨진 약속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저는 수많은 소망과 열망 그리고 기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채워지겠지만 많은 것들은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욕망이 충족되어 기쁠 때나 그렇지 못해 실망할 때에도 저는 당신 안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그리고 당신의 성스러운 약속들을 채워 주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저의 바람과 다르게 되어 가는 듯이 보이더라도 그것이 바로 당신의 뜻임을, 그리고 그 길이 결국엔 저를 위한 최선의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 주님. 저의 수많은 소망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특히 바로 그때에 저의 희망이 더 강해지도록 은총을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결코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심을. 아멘.”

 

-헨리 나웬, 열린 손으로, 64-74쪽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