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하느님이 아담에게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로써 아담은 그의 상태를 사실대로 고백했고, 그 고백이 그를 하느님께 개방시켰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은신처에서 나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 줄 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확실히 여러 가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인간일 따름이고 하느님은 참으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가 자신의 나약함, 잘못, 부족함, 그리고 엉클어진 과거 즉 우리의 삶의 역사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모든 사건에만 얽매여 있다면, 우리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울타리 뒤에 숨어 있는 셈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세계를 작은 은신처로 좁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숨기려 애쓰며, 가련하리만큼 남에게 벌써 노출된 것은 아닐지 의심하며 지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위장된 안전함을 포기하는 것이며, 구석으로 몰린다고 느낄 때 자신을 방어할 논거들을 더 이상 찾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충만한 빛으로 걸어 들어가 저는 불완전한 인간이고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간단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회심의 순간이며, 하느님과 우리의 참된 관계가 정립되는 때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끔씩만 잘못을 범하는 존재가 아니듯 하느님은 가끔씩만 용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러한 회심을 통해 우리는/ 긴장을 풀고 안도의 숨을 쉬며, 항상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품속에서 편안히 쉴 수 있게 됩니다. 이 경험은 평온함과 소박한 기쁨을 주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합니다. “나는 그것에 대한 답도 모르고 그것을 할 수도 없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 필요도 없고 혼자 힘으로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다른 피조물에게 기쁨으로 다가가게 하며, 우리 앞에 놓인 정원 안에서 자유로이 뛰놀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웃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인간은 인간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라는 것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손상된 인간적 본성을 고통으로 인식하게 하는 바로 그 회심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기쁨으로 인정하게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 연민의 정이 생겨납니다. (다음 주에 연민의 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헨리 나웬, 열린 손으로, 80-84쪽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