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연민의 정은 이웃과 내가 인간성을 함께 나눈다는 내적인 인식과 더불어 성장합니다. 이 동료 의식은 우리를 갈라놓는 벽을 허물어 버립니다. 우리 모두는 나라와 언어, 부와 가난, 지식과 무지라는 모든 장애물을 넘어/ 같은 먼지에서 창조되어 같은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같은 목표를 향하여 가고 있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억눌린 사람의 얼굴에서 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억누르는 사람의 손에서 나 자신의 손을 본다. 그들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고, 그들의 웃음은 곧 나의 웃음이다. 나도 그들처럼 남에게 고통을 줄 수 있고, 그들처럼 남을 용서할 수도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나에게 없는 것은 그들에게도 없다. 나 자신의 내면 안에서 그들의 잔혹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이의 눈 속에서 나는/ 용서를 구하는 나의 간청을 보며, 찌푸린 이마에서 나의 거절을 본다. 존재의 깊은 곳에서 나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누는 이웃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연민의 정은/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그 나라를 향해 모두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공동의 운명을 과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민의 정은 상대방의 것과 똑같은 불안이나 안도감을 함께 나누는 노예적인 예속 이상이고, 기쁨을 같이 나누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가 지니는 연민의 정이 기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선사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그 순간/ 새로운 삶의 방식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울타리 뒤로 숨어들지 않아도 되며, 그들 또한 인간이기 위하여 어떤 무기도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내면적인 사랑의 정원이 그들에게도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듯 하느님께 나아가는 회심은 곧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을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어려운 고비가 따르기도 합니다. 연민의 정은 다른 사람들이 강 건너편에 닿기를 바라는지 어떤지 모르고 그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는 우리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민의 정이 기도에 뿌리를 박고 있다면 그 반감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호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기도는/ 감사의 응답을 받지 못하거나 즉각적인 보상을 가져오지 못할 때에도, 연민의 정이 담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우리는 지금 바르게 기도하고 있는지요?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며 사는지요?...

 

 

-헨리 나웬, 열린 손으로, 85-90쪽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