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우리는 위령성월을 맞아 세 가지 형태의 교회, 성인들의 통공, 상존은총과 조력은총, 공로, 잠벌, ‘대사의 출현 과정, 대사의 종류, 대사의 수령 조건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대사의 발달과정 및 오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기원 :


초대교회 때 사도들은 누가 죄를 범하면 그를 공동체에서 축출하라고 가르쳤습니다.(1코린 5,2-13) 죄인은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 했고, 주교는 죄의 비중에 따라서 속죄 행위와 그 기간을 정해주면서 죄인에게 속죄 행위가 끝날 때까지 공식 예절 참석을 금지하는 파문을 내렸습니다. 이때 교회 공동체는 속죄하는 형제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면서 그가 받은 보속의 고행에 동참했습니다. 이러한 대속(代贖) 정신은, 곧 대신 속죄하는 정신은/ 지상 · 연옥 · 천국에 있는 교회 구성원 사이의 연대성, 다시 말해 성인들의 통공교리와 함께,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지체로서 갖는 연대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연대 책임을 진 것이죠. 주교는 죄인이 속죄 행위를 통해서 충분히 참회했다고 판단되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확인의 표지로써 성대한 화해예식에서 죄인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 공동체 생활에 참석할 수 있는 허락을 내렸습니다.

 

6세기에 들어서면서 속죄 규율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교가 집전하던 공동 화해 예절에 신부도 주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공동 공개 고백 대신에 개인 비밀 고백이 도입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고해신부는 보속을 부과하는 재량권을 갖고 오랜 기간의 엄격한 보속을/ 실천하기 쉬운 신심 행위, 곧 기도나 성지순례 · 성당참배나 자선으로 대체했습니다. 아울러 교회는 보속을 완수하지 못한 채 다시 죄를 지어 천문학적 비례로 증가된 보속을 끝내지 못하고 죽은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대속하도록 허락했습니다. / 그러던 차에 9세기에 들어서면서 잠벌(暫罰)을 없애주는 사면(赦免) 관습이 생겼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교회 공동체 전체가 대속을 바쳤지만, 이젠 주교가 신자들을 대표해서 죽은 이와 살아있는 신자들의 모든 잠벌을 용서해 줄 것을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 장엄 기도를 바쳤고, 그 기도가 담긴 사면서는 당사자에게 서면 또는 인편으로 전달되었습니다.

 

11세기 이후로는 죄의 잘못(culpa)과 죄의 벌(poena), 그리고 영원한 벌과 잠벌이 명백하게 구분되어 영벌의 대상인 죄의 잘못은 고해 신부의 사죄경을 통해서 용서받고, 잠벌은 고해 신부가 부과하는 보속을 통해서 탕감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중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1088-1099)는 십자군 참전 용사들이 출정에 앞서/ 고해성사를 통해 사죄 받은 죄의 잠벌을 모두 탕감해 주는 전대사를 반포했습니다. 교회가 과거에 대리 기도를 통해서 면제하던 잠벌을 교회법적 행위인 대사 부여를 통해서 탕감시켜 준 것이죠. 1300년에 교황 보니파시오 8(1294-1303)는 성년을 설정하고, 신자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로마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는 경우에 전대사를 부여했습니다. 1350년에 교황 끌레멘스 6세는 <하느님의 외아들>이란 교서를 통해서 대사 교리를 확정지었습니다. “첫째, 대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받은 죄의 남은 벌에 대한 사면이다. 곧 잠벌에 대한 사면이다. 둘째, 교회 보고에 간직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성혈 공로와 성인들의 넘치는 보속 공로는 대사 부여의 원천이 된다. 셋째, 대사를 부여하는 권한은 교황에게 있다. 넷째,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은 죄에 대한 참된 뉘우침, 죄의 고백, 사죄, 그리고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이다. 이 마지막 부분,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에는 수도원과 성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도 포함되었습니다. 대사 획득의 조건인 선행의 수단으로 등장한 기부금은/ 예술품을 낳게 함으로써 중세 서구의 문화 융성에 크게 기여했지만, 드러난 긍정적인 결과 이면에는 대사의 오용(誤用)이라는 부정적인 산물도 있었습니다.

 

- 오용(誤用) :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대사 획득의 전제 조건인 선행이 현금 지불로 가능해짐으로써 대사는 교회의 주요 수입원으로 오인되었습니다. 대사 설교가들은 모금의 성공을 위해서 대사의 효과를 과대하게 설명함으로써 죄의 잘못죄의 벌사이의 구별이 희미해졌고,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구원을 혼동하여 대사 수여증인 고해 성사표구원의 보증서로 오해했습니다. 대사가 모금의 수단으로 오인되고 대사 부여에 따른 수입금이 다른 지방으로 유출되어 재정적 손실을 겪게 됨으로써 세속 군주들도 대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교회가 부여한 대사를 관리하며 그 수입금의 일부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군주들은 자기 관내 교회에 부여된 대사나, 자신이 금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사에 한해서만 그들의 관할 지역에서 대사 설교를 허용했습니다. 이러한 대사의 세속화는/ 종교를 구실로 재정적 이득을 추구하는 수단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면벌의 효과를 지닌 대사가/ ‘면죄의 효과를 갖는 것으로 오도되었고, 오늘날 대사 증서면죄부’(免罪符)로 잘못 표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역사적으로 교회에는 면죄부라는 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면죄부라는 것은 있은 적이 없습니다. ‘대사 증서가 있었을 뿐입니다. ‘대사 증서면죄부로 오해되어 사용된 역사가 있었지 면죄부라는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음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으로 면죄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데, 교우들이 먼저 고해성사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