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은 가톨릭교회의 영광입니다. 그 가운데 십자가는 영광 중의 영광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 6,14. 공동번역)고 말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실로암 못에서 시력을 찾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온 세상에 있는 무수한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습니까? 죽은 지 사흘 째 되는 라자로가 다시 일어선 것도 위대하고 자연을 초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라자로만 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죽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습니까? 다섯 개의 빵을 샘처럼 늘리시어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 당시 무지로 굶주리고 있던 온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습니까? 열여덟 해 동안이나 마귀에 묶여 있던 여인이 풀려난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죄의 사슬로 묶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무슨 이득이 됩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영광은 무지로 말미암아 맹인이 된 이들을 비추어 주고, 죄의 압박이라는 사슬로 묶여 있던 이들을 풀어 주며, 모든 이들을 속량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주의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말고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라는 말은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고 이교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구원된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분은 일개 인간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 즉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강제로 희생되지 않으시고 자원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 친히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여 수난을 맞으러 나가시고, 그 고귀한 일을 기쁘게 하시며, 가시관을 기꺼워하시고, 인류에게 가져다주신 구원을 환호작약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평화로울 때만 우리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박해 시에도 그것이 기쁨이 될 것을 희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로운 때 예수님의 벗이 되고, 전쟁 때 그분의 원수가 되면 안 되겠습니다. 평화로운 지금 이때 우리의 임금님에게서 죄 사함과 온갖 은총의 선물을 받는다면, 우리는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의 임금님을 위해 용감히 싸워야 할 것입니다. 조금도 죄를 범하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우리도 그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무슨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베풀 게 될 때, 즉 그분을 위해 죽을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에게 빚을 갚게 됩니다.

 

-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의 예비신자 교리에서 -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이로다. 우리는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도다.”(1코린 1,18.2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