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복되어라,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 도를 닦는 자는!”(시편 128,1 참조) 성경이 주님께 대한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이 두려움만 있으면 신앙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듯이 두려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의 이유와 참된 뜻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를 덧붙입니다. 이에 대해 솔로몬이 잠언에서 말해 주었습니다. “슬기를 찾아 구하고 바른 판단을 얻고 싶다고 소리쳐 불러라. 은을 찾아 헤매듯 그것을 구하고 숨은 보화를 파헤치듯 그것을 찾아라. 그래야 눈이 열려 주님 두려운 줄 알게 되리라.”(2,4-5 참조)

 

위의 말에서 우리는 몇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주님께 대한 두려움에 이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지혜의 은혜를 청해야 합니다. 즉 독서나 다른 방법으로 지성의 탐구를 통하여 지혜를 찾아내어 지혜와 친숙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려움이란 인간의 나약성이 자기가 겪고 싶지 않은 것을 겪게 될 것을 무서워할 때 갖는 공포심입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의 죄 의식으로, 또는 우리보다 더 강한 자의 권세에 의해서, 또는 너무도 강렬한 자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또는 질병이나 야생 동물의 공격으로, 또는 어떤 악의 재난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학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성에서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물 그 자체가 우리 마음속에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아, 다들 와서 내 말 듣거라. 주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르쳐 주겠노라.”(시편 34,12 참조)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에 순종함으로서, 흠 없는 생활을 함으로서, 그리고 진리를 알게 됨으로서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두려움은 사랑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권고를 따르며 그분의 법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에 신뢰심을 두는 것입니다. “이제 너 이스라엘아! 너희 주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너희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가 보여주신 길만 따라가며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그를 섬기는 것이 아니냐?”(신명 10,12 참조) 이렇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참된 두려움 곧 경외심입니다.

 

예수님 친히 당신 자신을 길이라 하셨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한 좋은 길을 찾기 위해서 많은 길을 검토해 보고, 많은 이들의 교훈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유일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은 율법에서 찾을 수 있고 예언자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복음에서 찾을 수 있고 사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속에 거니는 복된 이들이 계명을 지킬 때 행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성 힐라리오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