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하느님께 대한 찬미는 현세 생활에서 우리 묵상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후세 생활에서도 찬미는 우리 기쁨의 영원한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현세 생활에서 그러한 묵상으로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후세 생활에 들어갈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 생활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한 그분께 청원합니다.

 

우리의 찬미는 기쁨으로 표현되고 우리의 청원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미래에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분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기에 우리는 희망 안에서 기뻐하지만 약속하신 것을 아직 받지 못했기에 갈망으로 탄식합니다. 약속받은 것을 이룰 때까지 그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침내 탄식은 끝나고 찬미만이 들어설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역사에는 두 가지 시기가 있습니다. 첫 시기는 이 생활에서 당하는 유혹과 시련의 현재 시기이고, 두 번째 시기는 영원한 안전과 기쁨의 미래 시기입니다. 부활 축일 전과 후의 두 가지 시기가 제정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활 축일 전 시기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의미하고 부활 후의 현재 시기는 후세에 누릴 행복을 의미합니다. 부활 축일 전에 경축하는 것을 우리는 현세에서 체험합니다. 부활 후에 경축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첫 시기를 단식과 기도로써 지내고, 지금 이 시기에는 단식을 풀고 찬미 속에 경축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 우리는 알렐루야를 노래합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여러분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독력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입과 목소리로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양심과 생활과 행동을 통해서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여러분이 선한 생활을 중단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계속 찬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한 생활에서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입술이 잠잠하다 해도 여러분의 생활은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귀는 그러한 여러분 마음의 박동을 듣습니다.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 -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