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1. 성경에서 물은 때때로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이 있던 배에 올랐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것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너희들도 할 수 있으니 물 위를 걸어보라고 초대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초대에 응했지만, 곧바로 물의 세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속으로 빠져들었으며, 예수님은 위기에 처한 베드로를 구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습니다. 이 내용은 신앙인이 참 평화를 누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려줍니다.

 

2. 처음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의지대로 내가 배운 대로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부모님에 의해서 혹은 우연찮은 기회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접하고 그 가르침과 인물 됨됨이에 매혹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분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겠다고 다짐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어찌 그리 녹록하겠습니까. 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회의가 생기고, 그 회의가 극대화되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습니다. 이때 신자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아이고,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고 느끼고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좋기는 하지만,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곧 먹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예수 사랑을 잠시 중단합니다. 비록 마음은 찜찜하지만, 어떤 계기가 마련될 날을 기다립니다. 다른 책을 보면서 혹은 다른 가르침을 접하면서 간간이 찾아오는 불안을 달래기도 하고 예수 사랑 외에 다른 길이 없는지도 모색합니다. 이렇게 중단된 예수 사랑은 언제 다시 시작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신앙을 무거운 짐처럼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살이도 녹록치 않는데, 신앙이 그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내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짐(윤리적 부담)이 되어 고통스럽다며 하소연합니다. 집안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도 못한 채, 신앙의 기쁨도 모른 채 무작정 견딥니다.

 

세 번째 부류는, 내면적 · 외면적 환경에 의해 정신적 · 사회적 죽음을 겪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고통과 죽음의 끝자락에서, 절망의 골짜기에서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 부활을 체험합니다. 그때까지 말로만 듣던 신앙의 기쁨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어쩔 수 없다면 생업마저도 바꿉니다. 또 다시 갈등요인이 발생한다면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신앙을 선택합니다.

 

세 번째 부류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곧 감각의 어둔 밤 · 의지의 어둔 밤 · 영의 어둔 밤들을 거치면서 참 평화에 이르는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건넨 인사말,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 인사말처럼 고통 한 가운데서도 참된 평화를 누리는,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무애진인’(無碍眞人)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평화의 세계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일련의 과정이 마태오복음 1422-36절에 담겨 있습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3. ‘때는 새벽녘, 배에는 예수님이 없었다.’ 신앙을 갖기 전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맞바람에 제자들은 고생을 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물은 때때로 어둠의 세력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그 물을 누리고 그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은 귀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우성칩니다. ‘그 와중에서 베드로가 용기를 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접하고 매력을 느끼며 사회 속에서 신앙인답게 살고자 시도합니다. ‘사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보라고 제안했고 베드로 역시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세상의 흐름을 밟고 일어서서 악을 끊고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물의 속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어부 베드로! 세상살이에 정통했던 그는 세상의 힘(돈 명예 권력의 힘)이 어떤지를 잘 알았기에 그 힘을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고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것은 신앙 때문에 세상에서 고통 받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때 베드로는 예수께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신앙인이 기댈 곳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손을 잡고 그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다.’ 예수님을 가슴에 품은 신앙인은 그제야 비로소 참된 평화를 누립니다. 마침내 고통 한 가운데서도 참된 평화를 누리는, 거칠 것 없이 자애로운 무애진인이 됩니다. ‘참 평화를 누리는 그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몰려왔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았다.’

 

여러분은 힘겨울 때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선에서 눈을 떼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랑의 삶을 멈추지 않으려는 우리는 시련 한 가운데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베드로에게 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거친 물 위를 걸어가도록!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