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퀴블러 로스 박사가 마이다넥의 유다인 강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는 어린이들이 수용되었던 막사에 신발과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참담하고 슬펐다. 그런데 나무로 된 막사의 벽에는 나비 그림이 가득 차있었다. 아이들이 손톱이나 자갈로 그리거나 새긴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이 나비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그 후 정신과 의사로서 수련과정을 거친 그녀는 죽어가는 이들을 25년간 상담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수용소의 나비 그림을 알아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자기들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을 나비로 표현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조차 죽음 앞에서 희망을 가지려 했다면, 하물며 부활의 주님을 믿고 있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인가?

 

어떤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돌아가신 분의 두 자녀가 장례절차에 따라 관 앞에 서서 작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러자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이 각자 받은 종이봉투를 열었고 수많은 나비가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며 파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멋진 장례식의 주인공이 바로 죽어가는 이들을 한평생 동반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였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가족과 조문객들이 자신의 죽음을 애석해하고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번데기의 삶을 벗어나 찬란하고 자유로운 나비의 삶을 누리게 될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조문객들이 살아있는 나비를 하늘로 날려보낼 것을 유언에서 당부했던 것이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1코린 15,19)

 

 

- 송봉모, 생명이 빛이 가슴 가득히, 301-303쪽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