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30) 묵시록에 있는 이 단락의 본문은 흥미롭다. 이 단락은 주님께서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게 하신 일곱 번째 편지에 속한다.

 

이 편지 첫 머리의 말씀은 아주 엄격하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묵시 3,19)

 

열의가 완전히 식어 버릴 때 그 미지근한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일한 구제책은 바로 쇄신된 마음의 기도, 그것이다. 미지근함은 무서운 악이다.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다.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게 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이때 악은 심각한 상태이다.

 

구제책은 간단하다. 그것은 곧 마음의 기도이다!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자 가까이에서도 일하신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주님께서는 거의 언제나 불만족, 양심의 가책, 거북스러움, 어떤 때에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 따위를 매개로 삼아 당신을 느끼게 하신다. 하느님께서 두드리신다.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가서 열어야 한다. 두드리시는 주님께 문을 여는 것이 통회이다.

 

우리의 믿음이 미지근할 때 나타나는 첫 반응은 불평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첫 반응은 통회여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알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느님께 외치는 것이어야 한다. 솔직함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께 향한 우리 마음의 문이 닫혀 있다는 증거이다. 솔직함과 통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인데, 이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들어오시게 된다. 괴로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통회가 필요하다!

 

-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주님, 저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27-29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