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 34,9)

 

1.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때 시편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깨달을 때 그 맛을 느끼게 되고, 기도의 맛을 느껴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시편에 대해 무지하고, 전례에서는 시편들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시편을 맛 들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교회의 거의 모든 전례 기도에 우리는 올바로 참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시편은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이전의 사상을 담고 있어 현재 통용되는 사고방식과 거리가 먼 표현법들, 개념들, 비유들, 어휘들이 쓰이고 있다. 우리가 시편을 깨닫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이 모든 어려움들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어려움을 알맞게 극복한다면 시편은 우리에게 그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겠지만, 무시해 버린다면 시편은 절대로 기도가 되지 못할 것이다.

 

2.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시편은 그냥 아무렇게나 마구 수집한 기도가 아니다. 시편들은 성령의 영감(靈感)에 이끌려 받아 쓰인 노래다. 다시 말해, 시편은 인간적인 시()가 아니다. 인간적인 시와 성령의 영감에 이끌려 쓴 시는 마치 그림에 있는 불과 실제적인 불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뿐만 아니라 시편은 공동체의 노래다. 이 말은, 공동체 안에서만 시편의 완전한 뜻과 음률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민요를 읽거나 낮은 소리로 읊조린다면 그 맛을 완전히 망쳤다고 느낄 것이다.

 

시편은 노래다. 게다가 계시를 가득히 담고 있는노래다. 시편은 구원의 모든 역사에 대한 요약이다. 따라서 시편은 예수님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시편은 그리스도 신비의 빛 안에서 봐야만 그 깊고 완전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 끝 날에야 비로소 그 빛이 충만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역사를 완성시켜 주는 분이시기에 시편을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3. 시편은 ’()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말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로부터 우러나는 감정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시편 기도에는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생명력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급히 서두르는 마음은 시편의 의미를 말살한다. 하느님께 대한 감정은, 이것을 표현할 수 있고 일으킬 수 있는 사랑과 침묵의 분위기가 없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시편은 셈족의 시다. 셈족의 시인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한 폭의 그림으로 그 감정을 묘사하는 화가와도 같다. 셈족의 시는 음률과 시 구절이 그 근본 바탕을 이룬다. 시의 구절은 어떤 개념을 표현하므로 번역될 수 있으나, 음률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편은 항상 노래로 불려야 할 것이다. “시편들은 읽기 위한 책도, 기도문도, 산문도 아닌 찬미의 시다. 모든 시편들은 어떤 음률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노래하지 않고 읊을 때도 이 음률적인 특징을 살려야 한다.”(성무일도에 관한 규칙, n.103)

 

4. 히브리의 시는 낭독하는 것이 아니다. 거의 항상 춤을 동반하는 노래다. 시편의 반복되는 음률은 춤을 위한 리듬처럼 그 음률에 맞춰 몸을 흔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히브리의 시는 공동체를 위한 노래다. 따라서 시편은 공동체 정신, 곧 교회에 대한 인식을 길러 주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영감을 받은 기도와 개인적인 기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감을 받은 기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개인적인 기도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더듬거리는 인간의 말로 하는 기도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밤을 새워 가며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개인적인 기도를 하셨던 예수님 자신도, 히브리인들이 성전과 회당에서 늘 쓰던 기도인 시편을 사용하셨고, 또 시편 기도를 바치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5. 히브리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은 개인적인 기도를 장려하면서도 영감(靈感)을 받은 기도로 기도하는 것을 수 세기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았으며, 3 천 년 동안이라는 오랜 전통에도 그 중요성이 감소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성령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집중이 잘 될 때 다음 시편으로 기도해 보자. 이 시편은 우주적인 시편이라 불린다.

 

시편 148, 1-3.5.7-13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로부터.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반짝이는 모든 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땅으로부터...

불이며 우박, 눈이며 안개 그분 말씀을 수행하는 거센 바람아

산들과 모든 언덕들 과일나무와 모든 향백나무들아

들짐승과 모든 집짐승 길짐승과 날짐승들아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함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 이름 홀로 높으시다.

그분의 엄위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주님, 저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99-112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