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1.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전례헌장 10) 교회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교회는 이 말을 하기 위해 2천 년을 기다렸다. 아니,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빛을 보게 된 이 말을 교회는 2천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다.

 

수세기에 걸친 묵상과 전례 탐구에 따라 준비된 말들이지만, 공동체들 안에서, 마음들 안에서 전례적인 회개가 시작되지 않는다면 다만 구호로 끝날 위험이 있다. 전례는 교회 생명의 절정이며 교회 활동의 최종 목적이지만,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해서도 절정인가? 우리의 영성생활은 이 정점을 겨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는가?

 

공의회는, “교회의 모든 사도직 활동은 성체성사로 되돌아가기 위해 성체성사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첫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 전례는, 영성생활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구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존경심의 첫 자리를, 영성생활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노력들에 있어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2. 준비 없이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구멍이 났거나 밑이 빠진 양동이로 물을 길러 샘에 가는 사람과 같다. 시간과 수고만 낭비할 것이다. 전례에 자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을 막는 사람이다. “마음은 깨어 있어야 하고 드러나 있어야 하며, 만남에 들떠 있어야 한다.” 전례의식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신앙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례의 기도는 전례보다 적어도 10분 전에 시작된다.

 

성 레오폴드는 미사 준비로 항상 1시간의 성체 조배를 미사에 앞서 하도록 했다. 나에게는 준비를 위한 뚜렷한 시간을 가지려는 결심이 있는가? 아니면 막연히 경건한 원의만 떠돌고 있는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전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하는 노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존경의 정도를 정확히 반영해 준다. 전례가 단지 하루 가운데 혹은 한 주간의 여러 가지 의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 그것은 나의 나약함에 따라 흔들린다. 반면에 전례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모든 것 위에서 첫 자리에 놓여 있다면 나의 준비는 성체적 회개에 결정적인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교회 문헌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전례에서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전례헌장 10)라고 시인할 용기가 있다면, 그것은 전례가 성덕을 향한 주요한 길임을 뜻한다. 즉 다른 모든 활동들은 전례를 정점으로 삼아 자기 차례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3. 하루를 위한 기도 : 항구하게 되풀이하라. “너의 온 힘을 다해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쉐마(이스라엘아, 들어라)를 무엇보다 미사 전례의 가장 성대한 순간인 성체를 영하는 순간에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쉐마를 빨리 암기하도록!

 

신명 6,4-9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시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주님, 저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162-168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