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먼저,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를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흠숭의 예를 바치고, 성인들께는 공경의 예를 바치며, 성모님께는 최고 높은 공경의 예를 바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는 '흠숭지례'를, 성인들께는 '공경지례'를, 그리고 성모님께는 '상경지례'를 바칩니다. 왜 하필 성모님께는 최고 높은 공경의 예, 곧 '상경지례'를 바칠까요?... 


첫째, 성모님은 신앙인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면서 가장 훌륭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으로 말씀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낳으셨고, 믿음으로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셨으며, 정결로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배필이 되셨고, 인내로서 희망의 모범이 되셨지요. 많은 덕스러움 중에서 성모님의 으뜸가는 덕은 애덕이 아닐까 합니다. 나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한 덕!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는 용기와 순명, 정결과 침묵, 대속과 전구 등 참으로 많은 덕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을 공경합니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 있으면 그분의 어머님을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지요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세 번째 이유는, 성모님은 우리들의 하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형되는 순간부터 사도 요한이 성모님을 모셨고, 그때부터 성모님은 사도들의 어머니가 되셨으며,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날부터 성모님은 지상에서 죄악과 투쟁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하늘나라 최고의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임종을 맞는 순간까지 나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눈물로 호소하시는 하늘엄마인 성모님께 우리가 어찌 상경지례를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성모님이 제자들의 모범이고, 예수님의 어머니이며, 우리들의 하늘엄마이기 때문에 성모님을 상경지례로 공경합니다.

 

성모님께 붙여진 하느님의 어머니란 호칭도 사실 성모님이 여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모님이 낳으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란 신앙 고백이죠.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예로부터 교회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나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죠. 복습했다 생각하시고요. 지금부터 새로운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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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모였던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 동정녀 마리아가 불렀던 마리아의 노래를 살펴봄이 우리의 영적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준비해 봤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의 업적과 인류 구원에 감사하며 부른 찬미가입니다. 이 노래는 구조와 내용 그리고 표현에 이르기까지 구약성경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부른 노래와 비슷하고, 시편을 비롯하여 수많은 구약성경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리아는 구약성경에 정통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보여 준 하느님의 업적을 제시한 가운데 그분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해 주는데, 한나와 마리아 두 분 모두 주님 안에서기뻐합니다. 기쁨의 근거가 구원자이신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고,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어버리십니다. 당신께 충실한 이들은 대대로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께 맞서는 자들은 깨트려버리십니다


2. 이 노래는 가난한 이들의 구원만을 주제로 하지 않고 현세 질서의 변화도 암시합니다. 그저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하여 누구나 부자가 되고 힘없던 이들도 목소리를 높이게 되리라고 노래하지 않고, 오히려 재산과 많은 자녀와 권력을 자랑하던 가치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하느님 안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마리아의 노래에서 또 하나 인상 깊은 점은 이 노래 안에는 청원기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업적과 자비를 찬양드릴 뿐! 이 노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신앙인들의 삶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지 한 번 더 묵상하게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언급되는 하느님은 결코 멀리 떨어져 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이고, 수많은 이들을 집단적으로 대충 바라보는 신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굽어 살피시는 인격적인 하느님입니다


4. 이분 앞에서 인간은 입니다. 마리아는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라고 고백하셨는데, 이때 이라는 말을 그리스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노예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노예라고 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자신의 뜻과 의지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그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종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종 열심한 유다인들에게는 영예로운 칭호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무엘의 기적적인 출생이야기에서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네 번에 걸쳐 자신을 주님의 여종이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54-55)라는 대목에서 하느님의 종 이스라엘 본인이 하느님 앞에서 비천한 자임을 깨달은 이들,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체험한 이들이자, 곤궁 속에서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일으켜 주시리라고 희망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들에게 영원히 미칩니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낮고 작은 모습으로 깨닫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입니다. 겸손은 가장 소중한 덕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겸손한 이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들어 올리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노래,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루카 10,42)이라는 사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자만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그분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 권세 부리는 자들, 부요한 자들은 아쉬움을 모르기에 하느님을 찾아 나설 겨를이 없고 풍요롭기에 무엇을 희망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5. 하느님의 거룩함을 겸손으로 드러낸 마리아의 노래첫 구절을 다시 들어봅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47-49)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인 영혼은 자연스럽게 경탄의 찬미가를 부르게 됩니다. 이때 그 영혼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 전체를 걸고 환호하면서 그분께 모든 것을 내맡긴 채 이 노래를 부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어느 한 개인에게 베푼 하느님의 자비를 묘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노래는 ‘마치 하느님이 내게 하신 것처럼모든 사람에게도, 모든 세대에 걸쳐서도 그렇게 행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노래는 곧 나의 노래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이것이 바로 신앙인들이 매일 성무일도 저녁기도에서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입니다.



- 가톨릭대사전, '마리아의 노래'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