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2014년에 루시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현대인이 350만 년 전 최초의 여성에게 붙인 이름이 루시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루시는 자유분방한 신여성입니다. 루시는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 폭력배에게 납치되어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되다가 갑자가 뇌사용 능력이 100% 향상됩니다. 이 영화에서 참 재미있는 묵상거리를 발견했는데, 인간이 뇌를 100%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뇌 과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보통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뇌를 15%를 사용할 수 있다면 초능력자가 되고, 20%를 사용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행동까지도 조종할 수 있으며, 40% 이상을 사용할 수 있다면 유전자나 사물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뇌를 사용하는 능력이 향상될수록 루시는 한 순간에 사막으로 갔다가 초원으로 갔다가 도시로 이동하는가 하면, 같은 자리에서 100년 전, 1000년 전, 그리고 100만 년 전 모습도 지켜봅니다. 심지어 우주 창조의 순간까지도 바라보는데 이 장면은 마치 부활의 세계, 곧 영원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장면을 뒤로 하고 나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목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루시가 뇌사용 능력이 무한대로 확장될 때 미래첨단의 대표적인 뇌 과학자에게 전화해서 질문하는 대목입니다.

 

“6000여 페이지에 해당하는 당신의 논문을 다 읽어봤는데,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당신의 가정은 옳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나의 뇌사용 용량이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 나는 24시간 밖에 살지 못하고 100%에 이르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텐데, 그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

 

뇌사용 능력이 무한대로 확장되어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 풀지 못해 고민스러운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의 의미입니다.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데, 내가 얻은 이 깨달음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 과학자는 루시의 질문에 쩔쩔매면서 궁색한 대답을 내놓는데, 사실 이성적으로 무슨 말을 더 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전도서로 번역된 코헬렛의 저자가 그 상태를 대변해 줍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코헬 1,2-3) 코헬렛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음을, 허무한 인생임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 설명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들을 만한 말을 다 들었을 테지만,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의 분부를 지키라는 말 한 마디만 결론으로 하고 싶다. 이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다.”(코헬 12,13. 공동번역)

 

하느님의 이름으로 결함 많은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 행위로 다시 한 번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그 외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 과학자가 루시에게 권한 사항도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을 후대에게 남기는 것, 그것이 사랑의 행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삶에서 남는 것은 결국 사랑의 행위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랑이신 하느님만이 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