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동물들은 굉장한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 북금곰은 마취제 주사를 맞은 뒤 비행기에 실려 무려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데려다 놓아도 자기가 머물던 터를 여지없이 찾아간다고 한다. 어떤 냄새도 어떤 지형적인 표식도 없지만, 또 빙하가 수시로 떨어져 나가면서 수로가 바뀌는데도 반드시 자기 집을 찾아간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강까지 돌아가기 위해 대양에서부터 무려 3,200킬로미터를 헤엄쳐 간다. 남극의 제비는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북극에서 무려 35,200킬로미터를 날아간다. 모두 다 동물들의 놀라운 귀소 본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가? 동물과 비교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우리는 천국 본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창조된 존재요, 주님께서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는 천국 본향을 그리워하는 DNA가 심어져 있고, 천국이란 말만 들어도 우리 혼은 설레게 된다.

 

어떤 이들은 천국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고 있으면 이 세상살이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사람이 되거나, 이 땅에서 제대로 적응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천국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도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도피하고자 천국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국에 대한 확신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하고 희망을 가지면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살려 하는 것이다.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누군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다가가서 얘야, 울지 마렴. 내가 너희 집에 데려다 줄게하고 말하면 금세 울음소리를 그친다. 아직 집에 간 것도 아닌데 아이의 마음은 벌써 집에 가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살이에서 근심에 짓눌리고 두려움으로 안절부절하다가도 아버지의 집을 의식하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된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집착하는 이들이 도피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자기 본향을 잊어버리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세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무상하게 변하는 것들로 가득 차있는데, 그 변하는 것들의 그림자 뒤에 자기 몸을 숨긴 채 영원한 세상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필자에게 왜 신앙생활을 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천국에 가고 싶어서 신앙생활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연히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죽어서 깨어보니 천국에 있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여기 오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우연히 왔네라고 말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생명으로 초대해 주신 하느님께 기쁘게 응답하여 세례를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주님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 송봉모,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 224~226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