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우리말로 번역된 산란해지다의 그리스 단어 타라소(tarasso)는 공포, 두려움, 고뇌, 근심, 동요 등의 강한 느낌들을 표현하는 단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지 잘 알고 계셨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자기들 가운데 하나가 스승을 배반할 것이란 말씀, 예수님이 곧 그들을 떠날 것이요 그들이 따라올 수 없다는 말씀, 나아가 그들 사이에 수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란 말씀이다. 하나하나가 다 가슴이 놀라고 무너지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산란할 때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방법을 알고 계신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굳게 움켜쥐는 것이다.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믿음을 회복하여야 한다. 우리는 마음이 불안과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떻게 하는가? 어떤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이들은 참선이나 요가와 같은 명상을 하는가 하면, 자기 긍정이나 최면술과 같은 심리적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당신을 믿도록 권고하신다. 마음이 불안과 근심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가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하느님 아버지를 굳게 믿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골리앗보다 더 힘세고 칼을 더 잘 쓰는 장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골리앗은 믿음으로 무장된 소년 다윗의 돌팔매질에 쓰러졌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국제적 문제들은 우리가 상대하기 어려운 골리앗이다. 그런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굳은 믿음이다. 성경에는 걱정하지 말라두려워하지 말라가 거의 1000번 나온다. 1000번이나 나오는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에게서 발견되는 악들 중에 가장 심각한 악도 아니요, 일곱 가지 대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렇게 거의 1000번에 걸쳐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셨을까?... 걱정과 두려움은 하느님 나라 건설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부식시킨다. 아무리 작은 걱정이나 두려움이라 해도 그것에 우리 시선이 사로잡히면, 우리는 태양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게 된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믿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영성신학자들은 걱정과 두려움을 불신앙과 동일시한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중 대다수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께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의탁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사탄(악마)이 중고품을 팔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사탄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위협할 때 써먹었던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각 도구에는 값이 매겨져 있었다. ‘탐욕에 제법 비싼 값이 매겨져 있었다. ‘험담은 탐욕의 두 배였다. 그런데 교만은 험담보다 훨씬 더 비쌌다. 그렇다고 교만이 가장 비싼 것은 아니었다. 가장 비싼 것은 탁자 한 귀퉁이에 볼품없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도구였다. 한 손님이 물었다. “아니 저게 뭔데 제일 비싼가요?” 사탄이 대답했다. “저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지요. 시기와 탐욕과 험담이 그리스도인들을 꺾지 못하고, 심지어 교만마저도 힘을 쓰지 못할 때, 제가 저것만 의존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넘어뜨릴 수 있지요.” “도대체 저것이 뭡니까?” 사탄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근심 걱정이라 합니다.”

 

송봉모,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 192~202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