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1. 2001911일 미국에서 비행기 테러 사건이 일어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을 때,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붕괴되는 건물 속에 깔리거나 갇혀 죽었다. 죽기 전 긴박한 순간에 전화로 자신의 배우자나 부모 친지들에게 했던 말은 대다수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테러 사건이 있은 며칠 뒤 ABC 뉴스는 마이클이란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는 911일 아침 세계무역센터에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아 며칠 동안 파편더미가 산처럼 쌓인 건물 잔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시신 식별 DNA 검사를 위해 아내의 칫솔을 소중하게 싸서 가져온 그는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날 아침으로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에 서로 직장 가느라 바빠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눈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한 번만 더 안을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마이클이 바라는 것은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소박한 일상적인 것이었다. 실제 죽음 앞에서 또는 중병에 걸렸을 때,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것, 그래서 건강할 때에는 단조롭고 무료하게 느끼는 일상이다.

 

2. 우리는 주변에서 가끔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린 다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본다. 일밖에 몰랐던 사람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애틋한 마음, 돌봄의 마음을 갖는다. 과거에는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이 변화하는 계절을 즐길 줄 안다. 아프기 전까지는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던 사람이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늘 조급함과 근심걱정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온유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결코 갖지 않았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왜 암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러한 삶을 느끼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삶을 새롭게 대하게 된 것은 어떤 지혜로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또는 도움이 되는 자기 계발서를 읽은 것도 아니다. 순전히 그들 스스로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갖게 된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정말로 새로운 것일까? 암에 걸리기 전에는 결코 몰랐던 가치 세계일까?... 그렇지 않다. 암에 걸리기 전에도 그들은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다만 세상살이에 정신이 팔려 주목하기보다는 무시했을 뿐! “다시 눈을 떠/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을 것이다.”(철학자 프레드릭 프랑크)

 

3. 우리의 영혼과 육신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는 우리가 죽음을 눈앞에 둘 때이다. 죽음 앞에서 영혼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행복하게 여기는 일들은, 육신이 살아생전 열심히 추구했던 일들과 너무나 다르다. 그동안 우리를 찬란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들, 곧 박사학위와 높은 지위, 업적과 평판, 큰집과 재산, 신용 등은 죽음 앞에서 의미를 잃어버린다. 대신에 하느님을 섬겼던 일, 배우자를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았던 일,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벗들을 위해 수고했던 일들을 헤아려보며 감사하거나 후회하게 된다.

 

4. 우리는 길어야 100년 남짓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인간은 죽는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것뿐이다. 그것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죽을 사를 풀어보면, 죽음의 돌발성을 알 수 있다. 위에 한 일자가 있고, 그 밑에 저녁 석자와 칼을 가리키는 비자가 있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해보면 죽음의 의미가 나온다. 죽음이란, 어느 날 저녁에 돌발적으로 날아오는 비수와 같은 것이다. 죽음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혼을 담아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하며 살았던 시간뿐이다.

(헨리 드러먼드)

 

 

- 송봉모,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 119~126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