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모든 축복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축복은 평화의 축복이다. 건강, 미모, 명성, 재산 등 모든 것을 소유했어도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그러한 것들은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일 뿐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라클레토스 성령이라면, 유산으로 남겨주신 것은 평화다. 예수님이 유산으로 주신 이 평화는 예수님이 자신이 세상살이에서 누리셨던 평화다. 그 평화는 유다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박해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실 때에도 누리셨던 것이요, 상처받고 신음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을 때에도 누리셨던 것이며, 제자들의 이기적인 모습과 약한 믿음 앞에서 실망을 금치 못하셨을 때에도 누리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때로 무력을 통해서 주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재물이나 지위를 통해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평화는 인간적 이해관계에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안정감일 뿐, 참된 의미의 평화는 아니다. 안전과 평화는 다르다.

 

우리가 하느님을 숭배하고 주님의 뜻을 찾을 때, 우리는 안전하지 않더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란 책으로 잘 알려진 취제크 신부님은 러시아에 선교하러 갔다가 스파이란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23년 동안이나 수용되어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평화로웠다. 그래서 풀려나온 다음에 쓴 책의 제목이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곤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누리는 평화. 그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나 다툼이 사라지고 곤란이나 위험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전쟁의 풍파 속에서도 누리는 평화다. 폭풍우 한가운데에서 누리는 평화의 가장 명백한 예는 예수님이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를 지나가실 때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수시고 계셨다. 큰 풍랑이 일면서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는데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다.(마태 8,23-27) 예수님이 유산으로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이렇게 폭풍우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누리셨던 평화다.

 

) 아주 큰 부자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그 유서에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 주식, 증권, 은행 예금 및 부동산을 모두 물려준다.”고 적혀있었다. 아들은 그 유서를 항상 품에 품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늘 헐벗고 굶주린 채 구걸하며 살아갔다. 누군가가 그를 동정하거나 조롱하면, 그는 거칠게 반응했다. “나한테 동정하지 마. 내게는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이 있어.” 그는 자기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품에서 유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 한심한 사람은 유서를 소중히 간직했지만, 유산에 대한 소유권 행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우화 속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남겨주신 유서를 품에만 보관하고 다닌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늘 헐벗고 굶주려 있다.

 

우리는 흔히 누구 때문에 평화를 잃었다또는 무엇 때문에 평화를 잃었다하면서 그 누구를 비난하거나 그 무엇을 비난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만일 그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면이라고 원망하면서 평화를 잃게 된 책임을 밖에서 찾는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평화는 내가 잃어버리는 것이지 누가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주님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분과의 일치된 관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 안에서 평화를 앗아갈 수 없다. 내 안에 평화가 없다면 내가 스스로 평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예수님이 남기신 평화는 죄의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 최후 만찬에서 유산으로 주어진 예수님의 평화를 제자들이 실제로 누리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치워버리시고 부활하신 다음부터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공생활 내내 참된 평화를 누리실 수 있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일도 죄사함을 위한 성령을 보내신 일이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을 갖고, 죄의 용서를 청하며, 어떤 곤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간직하자.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 송봉모,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306~313쪽 편집 -

 



* 묵상 : 


예레   1,18-19

이사 43,10

요한 14장 (특별히, 요한 14,27)

요한 16,33

시편 2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