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세금과 죽음 외에 인생에서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고난이다. 고난은 우리 가운데 일부에게는 아주 심하게 상처를 입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덜 상처를 입힌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고난의 결과로 더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헬렌 켈러에게 역경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처럼 훌륭한 여성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 대부분을 절망으로 이끌어 가고 서서히 자기 파멸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불만은 왕왕 분노로 변해 감정적이거나 신체적인 폭력으로 분출되어 버린다.

 

널리 알려진 준주성범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고난은 쓰라린 체험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잠재적인 유익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 고난을 순수하게 부정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가장 큰 축복은 문제점으로 가장하고 우리의 인생에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경 속에 있는 축복을 찾으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세 가지 이익을 상기시키고 싶다. 첫 번째 이익은,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개발한다면 고난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더욱 깊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30대 중반인 관상심장발작증에 걸린 조지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너무나 쇠약해서 짧은 거리밖에는 걸을 수가 없었으며, 주로 앉아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40대가 되자 조지는 얼굴의 암 때문에 코의 절제를 포함해서 20여 차례에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언젠가 나는 조지에게 그렇게 많은 병을 가지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들은 하느님께서 애정을 담아서 나에게 나눠 준 카드이고, 내가 애정을 담아서 게임을 할 카드일세.” 나는 하느님에 대한 그의 깊은 신뢰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고난이 줄 수 있는 두 번째 축복은, 우리 인생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신호이다. 나환자는 모든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경고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나환자들의 손가락은 그들에게 병원균의 침입을 알리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뚝뚝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위가 뒤틀리는 증상이나 두통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해 준다. 만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신체적 · 감정적 · 사회적인 불쾌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본인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고난은 우리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식을 갖게 해 준다. 우리는 하느님의 집으로 가고 있다. 하느님의 집은 영원히 우리 집이 될 것이다. 고난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직도 집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둡고 곤란한 시기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항복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성스러운 장소 곧 하느님의 집으로 가고 있는 순례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만일 우리가 비현실적인 짓을 하려고 한다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이 여행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심각한 문제로 위장을 하고 우리 인생에 들어온 수많은 축복을 발견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 John Powell, 믿음의 눈으로, 55~58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