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신이 제시하는 가르침이나 이념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그리스도교와의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지 않았죠. 선불교에서는 수행의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법으로 인도해 주는 스승이라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으려면, 그 스승에게 매이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첫째 이유는, 어떤 깨달음이나 교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진리와 생명을 얻으려면 이쪽으로 가야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4,6) 당신을 따라오라는 초대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초대입니다.

 

누군가의 뒤를 따르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의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예수님께 맡기고 따라가려면, 그분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의탁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복음 성악가 윅스Kim Wickes6·25 전쟁 때 폭탄을 맞아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은 파편으로 두 눈을 잃은 한국 여성입니다. 고아원에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되었는데 훗날 훌륭한 성악가가 되어 그레이엄 목사의 선교팀에 합류했지요. 그녀의 고백은 신뢰와 의탁으로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내 손을 붙들고 인도해 주는 사람은 100미터 앞에 무엇이 있다고 일러주지 않습니다. 그저 내 발 앞에 계단이 있다고만 말해줍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계단에 오르기 위해 발을 들기만 하면 됩니다. 믿을 만한 안내자에게 나 자신을 맡기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10년 후 20년 후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또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진실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내어맡기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가다 보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무사히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박상훈, 하나님 왜 이러세요?, 99쪽 재인용)

 

신뢰와 의탁으로 주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뿐! 우리 대다수는 이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눈앞에 있는 그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위와 계산을 더 많이 합니다. 천국과 관련해서는 예수님을 주권자로 고백하지만, 세상살이와 관련해서는 예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과 걱정에 싸여있고 버겁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뜻대로 살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결국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지금-여기에머무는 것을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 40,31)

 

- 송봉모, 예수: 새 시대를 여심, 244~250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