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찬미예수님! 교우 여러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LA대교구는 329일까지 모든 미사를 중지시켰고, LA시는 시민들의 이동 제한을 선언했습니다. ‘사회적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낳는 시점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위로가 아닌 희망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0개월 전부터 희망을 묵상했던 제가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저의 단상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 가장 먼저 악마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란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사탄(악마)이 중고품을 팔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사탄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위협할 때 써먹었던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각 도구에는 값이 매겨져 있었다. 탐욕에 제법 비싼 값이 매겨져 있었다. 험담은 탐욕의 두 배였다. 그런데 교만은 험담보다 훨씬 더 비쌌다. 그렇다고 교만이 가장 비싼 것은 아니었다. 가장 비싼 것은 탁자 한 귀퉁이에 볼품없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도구였다.

 

한 손님이 물었다. “아니 저게 뭔데 제일 비싼가요?” 사탄이 대답하였다. “저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지요. 시기와 탐욕과 험담이 그리스도인들을 꺾지 못하고, 심지어 교만마저도 힘을 쓰지 못할 때, 제가 저것에만 의존하면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넘어뜨릴 수 있지요.” “도대체 저것이 뭡니까?” 사탄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근심 걱정이라 합니다.”(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1, 200-201쪽 인용)

 

제가 보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는 두려움과 혐오의 바이러스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과 혐오의 밑바닥에는 근심 걱정이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은 우리는 평소에 얼마만큼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며 살았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떤 부분에서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는 신앙의 힘을 맛볼 수 있는 시점을 맞았습니다.

 

2. 두 번째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올해 24일 중앙일보 <삶의 향기>에 실린 제 글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느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놀라워하는 것이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조건 없는 신뢰를 두는 것이다.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평화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난조차도!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부성을 직접 체험하는 일이다.”

 

여러분께서 느끼셨겠지만, 사실 이 글은 올해 연중 제2주일에 했던 강론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일찍부터 저와 여러분을 위해 미리 준비시켜 주셨다고 말입니다. 여러분께서 듣든지 듣지 않든지 상관없이 성령께서는 저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에게 꾸준히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희망의 덕을 키울 것을!” 223일 중아일보 <삶의 향기>에 썼던 하느님 나라317일에 썼던 거룩한 갈망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찍이 로날드 롤하이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적인 사람의 반대되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고 이교도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모르게 되는 사람이다. 에너지가 없는 것, 살아가는 모든 활력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모든 상태가 갈라지고 통합되지 않은 상태...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라고요. 삶의 활력(삶의 의미)은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열정‘entheos’입니다. 영어로 ‘enthusiasm’이죠. ‘en’‘in’이란 뜻이고, ‘theos’‘God’이란 뜻입니다. 열정, 을 낼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예수: 새 시대를 여심, 320-327쪽 참조)

 

최근에는 홍성남 신부님의 글도 소개해 드렸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허약해지면, 혹은 상황이 힘들어지면 여러 가지 불길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이런 불길한 생각들은 우리 마음이 과거나 혹은 미래에 가 있을 때 더 기승을 부립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가지게 하죠. 우리가 갖는 심리적 고통은 어쩌면 과거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현재로부터 멀어질수록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영적 훈련은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착한 사람 그만두기, 60쪽 편집)

 

3.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내용이 없으신지요?... 저는 작년 920일에 발간한 정하상 한인성당 <사목계획서>에 실린 글이 떠오릅니다. 그 글을 준비한 것은 작년 6월부터였습니다. 그때 저는 계속해서 희망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는데, 희망은 뜻밖에도 두려움과 연결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시려나 보다라고 느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중 하나가 희망을 품는 것이고, 희망을 키우는 비법 중 하나가 지금-여기에 머무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게 <사목계획서>에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필요한 한 가지 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작성할 때 글이 지금 내가 깨달은 것보다 앞서 가 있다고 지인들에게 고백하곤 했는데, 올해 1월에 이르러서야 그 느낌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저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이것을 깨달은 날이 120일이었는데, 그때도 이 말씀이 코로나-19 사태를 위해 준비시켜 주신 말씀인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지난 상반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는 흐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살아 계시며, 오늘도 저와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십니다. 이것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시점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희망)을 보증해 줍니다.(히브 11,1)

 

4.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제가 계속해서 하느님 아버지대신 “Abba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죠. “Abba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우리들에게 선포되었던 말씀들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올해 11일에 드렸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주일마다 저를 통해 우리 교우들에게 선포되었던 성경구절을 몇 개 남기고자 합니다. 아래 구절들은 되도록 암송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이번 사태를 대비해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맡기신 말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신명 31,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내버리지도 않을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묵시 2,10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1마카 2,62 “죄 많은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의 영광은 거름 더미와 구더기로 변한다.”

 

요한 4,13-14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 6,27

 

요한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5. 저와 함께 여기까지 길을 걸어오신 분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마냥 두렵게 바라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사태를 통해 성령께서 인류를 어디로 이끌어 가실지 주목해 봅시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의해 거대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될 것을 염려하는 이런 사태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를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우리는 모두 한 형제라는 진실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숨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그 숨결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숨은 입술과 혀로 발음되는 이름이 아닌 코로 숨 쉬어지는breathed이름, 곧 하느님이십니다.(탈출 20,7 참조)

 

aloneall one의 차이는 글자 하나 차이죠. ‘L’이란 단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뿐입니다. L이란 단어를 Love의 약자로 본다면, L이 있으면, 곧 사랑이 있으면 모두 하나가 되고, 없으면 외로운이 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은 이웃과 더불어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요한 14,1; 요한 14,27; 마태 8,26) 기쁨과 희망 간직한 나날 되시기를!

 


-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성당 박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