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COVID-19 사태로 인해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감염을 겁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 체제(system)가 붕괴될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세 가지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들이다. 둘째, 성숙한 사랑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매우 비슷하다. 셋째,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 간접적인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우리는 상호간에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유다인들에겐 발음이 불가능한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은 입술과 혀로 발음되는 이름이 아니라, 코로 숨 쉬어지는(breathed)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매 순간 하는 일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세상에 태어나면서 맨 처음 한 일도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으며,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일 또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호흡에는 유다교식, 이슬람교식, 그리스도교식 호흡이 없습니다. 가난뱅이 호흡도 부자 호흡도 없지요. 하느님의 바람은 어디든지 불고 싶은 데로”(요한 3,8) 부는데,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호흡처럼,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바로 그 숨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으로 거둔 그 숨이며,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을 향하여 평화와 용서, 성령으로 내쉬신 바로 그 숨입니다. 그 숨은 정확하게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코를 드나드는 원자 알맹이들은 물리적으로 빅뱅에서 발생한 바로 그 원자 알맹이로서, ‘하나임은 더 이상 신비주의적 관념이 아닌 과학적 사실입니다.>(벌거벗은 지금, 29~31쪽 편집)

 

<그러나 일치를 위해서는 상호간에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분리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상실의 위험에 직면하면서까지 독립성을 길러주려고 애씁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영적 성장이며 정상에 오르는 이 고독한 여행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적인 결혼이나 사회의 지지 없이는 이 중요한 여행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결혼과 사회는 그러한 개인의 여행을 지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모든 경우가 다 그러하듯,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한 희생은 결과적으로 그 이상의 자기 성장을 보장해줍니다.

 

즉 혼자서 올라간 정상에서 자기를 도운 사람 또는 가정으로 귀환하는 것은 다시 그 결혼과 사회를 새로운 단계로 올리는데 이바지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인과 사회의 성장은 서로서로 의존하나, 성장하려고 할 때에는 항상 그리고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칼릴 지브란이 쓴 <예언자>라는 글 중에서 결혼과 관련된 부분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아직도 가야 할 길, 242~244쪽 편집)

 

<끝으로,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적이어야만 합니다. 이 말은 현실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경험하면서 불처럼 타오르는 회의와 의문을 통해 빚어지고 굳어진 개인적인 것이어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경우, 제 역할을 하려면 우리는 간접적인 지식에 의존해야만 하죠. 그러나 삶의 의미, 목적, 죽음 등이 문제될 때 간접적인 지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간접적인 하느님에 대한 간접적인 신앙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개인적인 언어와 특수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아직도 가야 할 길, 279~280쪽 편집)

 

COVID-19 사태는, 인류로 하여금 굳건한 신앙 안에서 서로 한 마음이 되어 공동선을 위한 체제(system)을 구축하라고 촉구하는 듯합니다. 이런 체제 확립을 위한 힘(power)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듭거듭 묵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