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군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는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라고 환호했던 사람들이 5일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으로 돌변했습니다. ,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사순절 시작하면서 지난 5주 동안 선포되었던 복음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하시면서 당신의 신성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퍼 올릴 수 있게 해 주셨고,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면서 당신이 세상의 빛임을 선포하셨으며, 결정적으로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키면서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그 어떤 임금도, 그 어떤 메시아도 흉내 낼 수 없는 슈퍼 울트라 짱 메시아입니다. 군중은 직·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접했고 이분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그들은 드디어 그날이 왔음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억눌려 왔던 모든 억압과 부정부패,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송두리째 벗어던질 그 날이!

 

그런데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쓴 죄수의 모습으로 등장한 예수님을 봤을 때, 그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온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의 모든 것을 걸었건만,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 상실감이, 그 배신감이 좌절을 넘어 분노로, 주체할 수 없는 증오로 표출된 것이죠.

 

그렇습니다. 사실 그들은 좌절과 고통, 죽음을 걱정할 필요 없는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다른 이에게 희생당할 수 없는 메시아, 권능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내는 메시아, 결코 나약하지 않으며 상처받지 않는 그런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셔야 할 길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좌절과 실망을 피하기 위한 방어막도 아니요, 안정을 보장 받기 위한 보호막도 아니죠. 그것은 말씀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길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도 피하려고 하는 것들을 스스로 어깨에 들쳐 메는 고독한 여정입니다. 군중은 그 길을 몰랐던 것입니다. 사랑은 조롱받고 거절당할 수 있지만, 결코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환영했나요? 우리도 혹시 2000년 전 그들처럼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당신의 계획과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묵묵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성주간은 나 중심의 삶에서 주님의 사랑 중심으로 자기 삶의 무게를 옮겨가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온 마음으로(whole-heartedly) 주님의 사랑을 품는 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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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