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큰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어떤 의식을 거행합니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피를 흘려 그 피를 함께 마시거나 하는! 그런 의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다잡고 우리가 내린 결단이 결코 변하지 않기를 맹세합니다. 이런 의식에는 비장함이 감돌죠. 예수님도 오늘, 인류의 악과 벌이는 한판 승부를 앞두고 어떤 의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준비한 의식은 특이했습니다. 그것은 생뚱맞게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 뜻밖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히브리인들의 역사적 원체험을 살펴봅시다.

 

1. 기원 전 1300년 경 어느 날 밤,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 전역을 휘감았습니다. 그날 밤, 죽음의 천사는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맏아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죽음의 천사는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혀 있던 집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집에서는 어떤 곡소리도 들리지 않았죠. 어린양의 피가 묻혀 있던 집 안에 어떤 사람이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죽음의 천사는 1년 된 수컷 어린양의 피가 묻혀 있던 집 안으로는 일체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일종의 계약이었습니다. 그 계약은 예수님께서 인류와 맺으실 새로운 계약의 예표였습니다


죽음의 천사로부터 히브리인들을 보호한 어린양의 피처럼, 예수님은 인류를 죽음에서 구원할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원전 1300년 경 히브리인들처럼 일체 죽음을 겪지 않을 겁니다.(요한 11,25-26 참조) 예수님은 오늘 인류를 대표해서 제자들과 그 계약을 맺으려 하십니다. 그런데 계약을 맺기에 앞서 예수님은 우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데, 이 또한 히브리인들의 출애굽과 관련된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2. 히브리인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노예 살이 하던 이집트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런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발을 씻겨주는 것은 노예가 하던 일이었으니까요.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이 노예가 하던 일을 한다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베드로는 일찍이 이런 사랑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며, 어떻게 주인이 종들의 발을 씻겨 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의 발 씻김은 예수님의 본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 마음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단지, 결전을 앞두고 그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일 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스승님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행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3-15절 편집)


이런 게 사랑입니다. 보다 큰 자가 보자 작은 자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이! 이것이 죄를 씻는 비결이고, 이것이 새 계약을 맺는 전제조건이며, 이것이 새 계약을 맺은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에게 확고한 기준은,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선포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벗어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어주며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인내롭게 견디며 이기심의 저울을 떨어뜨리고 상대방의 필요를 첫 자리에 두는 것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고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며 흘려보내야 할 때가 되면 자유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안토니오 벨로)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신 것처럼 거짓과 교만의 옷을 벗어야 하고, 예수님께서 허리를 굽히신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참회하며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순명으로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다면, 우리의 죄는 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4. 어쩌면 베드로는 죄의식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범을 보면서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죄가 되며, 어떻게 해야 그 죄를 씻을 수 있는지?’도 알았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발을 씻는다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깨끗하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왜 다시 씻어야 할까요?... 그것은 목욕씻음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목욕은 온몸을 깨끗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목욕한 사람은 매번 손과 머리를 씻을 필요가 없죠. 목욕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반면, ‘씻음은 몸의 일부를 깨끗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위가 더렵혀진 것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목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흙이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씻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목욕과 달리 ‘씻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행위입니다.>(17년 야곱의 우물 묵상 글 편집) 


특별히 제자들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필리 2,3; 1테살 5,11)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죄로 더렵혀진 영혼을 깨끗하게 만드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물든 인류를 해방시키려고, 그리고 죄의 결과인 죽음의 덫에 걸린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그 비결을 알려주셨는데,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섬기는 사랑이었습니다.

 

5. 우리는 사랑의 삶을 다짐했고, 성체를 영할 때마다 그 서약을 갱신합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사랑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성체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우리는 그 사랑을 먹고 힘을 내죠.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이 사랑의 삶을 살아내라고 성체성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1독서로 선포된 탈출기 1214절 말씀을 떠올려봅시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이 말씀에 따라 매년 거행되는 파스카 축제는 유다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본질적인 축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축제의 의미를 승화시키고 완성시킨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체성사를 거행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체성사를 거행해야 한다는 말은 일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오늘 강론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렸죠. “큰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손가락을 자르거나, 피를 흘려 그 피를 함께 나누어 마시는 의식을 거행한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악과 한판 승부를 앞두고 준비한 의식은 그만큼 비장한 행위였습니다. 그 행위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며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식이란 예수님의 몸과 피였죠. 달리 말해, 예수님께서 준비한 마지막 의식은 섬기는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