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성령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저는 가끔 햇볕이 쨍쨍 내래쬘 때 달리기를 하는데, 뛰다 보면 나무 그늘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달리면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땡볕 아래에서 달리면 죽을 맛입니다. 그때 문득, 성령은 제게 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욕망으로 헐떡거리는 영혼을 쉬게 하는 그늘과 같은 존재! 나무 그늘에 앉아 쏟아지는 햇볕을 바라보면 세상은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땡볕 아래에서 느끼는 세상과는 정말 많이 다르지요. 같은 세상인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같은 세상이라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분이십니다.

 

1-1. 그런데 그늘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림자 · 어둠 · 실패 · 좌절 · 상처 · 부끄러움도 연상케 하는데, 성령께서는 그 그늘의 가치를 일깨워 주십니다. “햇볕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는 노랫말처럼, 성령께서는 여태 숨기고 싶었던 그늘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거나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성령께서는 그늘을 마냥 숨겨야할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일깨워 주실 뿐만 아니라 햇볕의 장점도, 곧 세상의 아름다움과 이웃의 고마움에도 눈 뜨게 도와주십니다.

 

) 자신의 그림자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이 한 낮에 운동장을 지나다가 문득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고 빨리 걸었습니다. 그래도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자 그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자 그때부터 그는 죽으라고 뛰었습니다. 결국 그는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림자를 떨쳐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렇죠.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상식을 우리는 자기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자를 떨쳐버리려고만 하지, 끌어않을 생각은 못 하니까요. 사실 무턱 대고 자신의 그림자를 끌어안을 수는 없을 겁니다. “괜찮아. 그래도 너는 사랑스러워라고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그 사람은 자신과 이웃의 그림자를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나무 그늘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드넓은 품속에 안긴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 조건 없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할 수도 있고 그림자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건 없는 사랑이 뭔지를 몰라서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성령은 조건 없이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이거늘...

 

1-2. 저에게 성령은 바람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물에 젖은 빨래를 널어놓으면 그 물기를 말리는 것은 바람이지요. 근심 · 걱정 · 두려움 · 상처 등으로 젖은 제 영혼을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축축해 진 영혼에게서 근심 걱정을 몰아내는 바람이신 성령!

 

1-3. 저에게 성령은 입니다. 수많은 밀가루를 하나로 모으려 해도 도무지 모을 수 없지만, 그곳에 물을 섞으면 밀가루들은 하나의 반죽이 되어 맛있는 빵으로 부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 빼고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수이신 성령입니다. 삼위일체의 근원이신 성령께서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치의 원리입니다.

 

) 이 대목에서 바벨탑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쌓고자 용쓰다가 말이 뒤섞이자 분열되어 각기 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내용, 아시죠?...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어 자신의 탑을 높이 세우면, 그곳에는 반드시 분열이 찾아옵니다. 의견이 갈리고 다툼이 생겨, 끝내 전쟁으로 공멸합니다.

 

1독서에서 사도들이 성령으로 가득 차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모두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었다(사도 2,6.11 참조)는 나오는데, 이 장면은 정확하게 구약의 바벨탑 사건과 정반대되는 현상입니다. 비록 언어가 서로 다르더라도 성령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라고요.

 

2.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성령은 어떤 분이신지요?... 사도들에게 성령은 이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더니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 2,2-3 참조)라고 했으니까요. 불은 뜨거움, 곧 열정입니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누군가를 사랑한 열정! 다시 말해, 불은 뜨거운 사랑이고, 한편으로는 따뜻함과 관심 · 관대함과 너그러움입니다. 용광로에 사용된 불이 모든 때와 허물 그리고 장벽을 녹여버리듯이, 성령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가로막힌 마음의 벽과 차별의식을 허물어 버리고, 미움과 상처도 없애버리십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은 의 형상으로 내려앉았습니다. 혀는 언어를 상징하고, 언어는 친교의 수단이자 배움과 깨달음의 수단입니다. 보잘것없음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임으로서 하나 되게 이끌고, 잘못된 것을 훈육하며, 분열된 것을 화해시키고,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성령을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비로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바로 교회의 생일입니다. 성령강림을 통해서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깨달았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제사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느님을 자신들의 “Abba”로 고백했지요. 이렇듯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3. 이즈음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그렇게 좋은 성령을 나는 왜 느끼지 못할까?... 성령께서는 개인의 성장과 성화(聖化)를 위해서 성령칠은을 베푸시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는 서른 여 가지의 은사를 베푼다는데, 왜 나에게는 그것이 귓전에서만 맴도는 공자 왈 맹자 왈처럼 들릴까?... 이미 천주교 신자로 세례를 받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활동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직 신앙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빛이 없으면 눈은 보지 못하고, 소리가 없으면 귀는 듣지 못하며, 공기 중에 냄새가 없으면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그것은 신체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극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자극이 없으면 활동을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신앙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성령의 은총을 활용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극이 없어 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인데, 응답이라는 자극제가 미미한 것이지요.

 

성령이 아니시면 하느님은 너무나 멀리 계시고, 그리스도는 과거의 한 인물일 뿐이며, 복음은 죽은 글자가 되고, 교회는 수많은 기관 중 하나일 뿐입니다. 권위는 너무나 쉽게 지배로 변하고, 선교는 물건을 팔아먹는 것과 같은 선전이 되며, 전례는 깡마른 과거의 추억이 되고,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의 윤리로 바뀝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는 세상 곳곳에서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지금-여기에 계시며, 복음은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고, 교회는 천주성삼과 나누는 친교의 장이 됩니다. 권위는 자유를 낳는 봉사가 되고, 선교는 또 다른 오순절 사건이 되며, 전례는 과거를 되살리고 미래를 끌어당겨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하늘나라의 잔치가 되고, 인간이 행위는 하느님의 활동이 됩니다.

 

4. 이렇게 성령 안에서는 모든 게 바뀝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강림을 청해야 하고, 틈나는 대로 성령송가를 바치며 성령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성령강림은 2천 년 전에 한 번만 발생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교회의 성장과 활력을 위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령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들아, 딸아, 하늘을 향해 숨 쉬어라!”

 

<오늘 성령이 불 혀 모양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되리라.”고 가르치며 그것을 증언하도록, 제자들을 온 세상에 파견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성령강림대축일 제2저녁기도, 성모의 노래 후렴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