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어느 신문사에서 하느님께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 질문에 하느님께서 꼭 응답하신다고 가정한다면, 무슨 질문을 하겠느냐?’고 조사했을 때,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은 하느님, 제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였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에 삶의 의미를 치면 무려 610만 개의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질문하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수치입니다.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의미를 갖는 것은 중요하죠. 그것은, 어떻게 사느냐보다는 왜 사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힘을 내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잡혀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집과 모든 재산을 다 뺏기고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지내면서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로고테라피(의미 추구를 통한 치료)를 완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외투 깊이 감추어 두었던 원고가 발각되어 빼앗기게 됩니다. 유일한 삶의 의미였던 원고를 빼앗기자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힘도 이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절망이었죠. 그러다가 전환점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오묘한 방법으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가스 처형실에서 죽은 죄수가 입던 누더기 옷을 배급받습니다. 옷을 갈아입다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발견합니다. “,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4-5 필자 직역) 이 글을 읽고 프랭클은 다시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이죠. 그는 말합니다. “인생의 어떤 험한 처지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힘이 생긴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고통스런 처지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2. 주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스어 열정의 의미를 파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열정은 엔테오스(entheos)이고, 그 의미는 하느님 안에 머묾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떤 어려움을 겪든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는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할 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하면 즐겁고 성취감도 느끼고 보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곧 삶의 의미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어떤 이유로든 자기가 바라는 일을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불행하게 느낄 것입니다. 이렇듯 삶의 의미는 일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는 하느님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콜로 3,23 필자 직역)라고 했을 때, ‘여러분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된 노예들이었습니다. 노예들이 하는 일은 지극히 사소하고 비천하고 힘든 일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한 일들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지금 그들이 노예로 비천하게 살아가지만,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 그분을 섬기는 마음으로 한다면 비록 그 일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해도 살아야 할 의미는 충분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그분의 더 큰 영광을 위해 하겠다는 지향으로 을 다한다면 우리 삶은 그만큼 충만하게 될 것이니까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요한 11,25 참조) 믿음을 갖게 된 그날, 내 삶의 의미가 생겼고 세상만사가 이해되었다.”(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

 


- 송봉모, 예수: 새 시대를 여심, 320~327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