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창조와 구원을 통해 받은 은혜들과 갖가지 구체적인 선물들을 기억하는 것!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으며, 거룩한 안배에 따라 할 수 있는 한 당신 자신까지 내어주고자 하셨음을 마음속 깊이 느끼며 생각하는 것! 기억은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우리가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한 마디로, 기억은 사도적 삶 안에 있는 주님 현존의 은총이다.

 

기억을 되찾는 은총을 청하자. 개인 여정에 대한 기억,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찾으셨는가에 대한 기억, 가족에 대한 기억 등.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더 힘차게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자신을 깨우는 일이다.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0,32; 13,7) 기억은 갖가지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며 우리 마음을 굳세게 한다.

 

1. 백성의 기억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백성에게도 기억이 있다. 인류 역시 공유하는 기억이 있다. 백성의 기억은 컴퓨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생생히 새겨져 있다. 마리아처럼 마음에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다. 기억은 결합하고 통합하는 힘이 있다. 지성이 자신의 힘으로만 서있을 때는 무너지는 데 비해, 기억은 한 가족을 또는 한 민족을 하나로 묶는 활기찬 힘을 갖고 있다. 기억이 없는 가문은 그 이름값을 못한다. 살아있는 기억인 조부모를 존경하지도 돌보지도 않는 가족은 붕괴된 집안이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가족은 미래가 있는 가문이다.

 

인류 전체는 공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선과 악의 투쟁에 대한 기억을! 패배했으나 인간 본성의 적으로서 되살아나는 그 옛날의 뱀(묵시 12,7-9)과 천사 가브리엘 사이의 영원한 투쟁 말이다. 모든 민족의 공동 유산이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시, 그것이 바로 인류의 기억이다. 인류 역사는 은총과 죄의 긴 싸움이지만, 그 공동의 기억은 구체적인 얼굴, 곧 우리 백성의 얼굴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고통과 멸시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위엄도 볼 수 있다. 그 위엄은 그들이 역사와 함께한 백성, 공동의 기억과 함께한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다.

 

2. 교회의 기억

성체성사는 주님 수난에 대한 기억이다. 수난에는 승리가 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1)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신명 31,6.8) 하느님 구원에 대한 기억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힘이 된다.

 

하느님 백성은 광야를 걸으며 시험을 받았다. 신명기의 충고는 성경 전체에 걸쳐 나오는 충고들과 동일하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여라.”(8,2)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4,9)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상에 빠지고 노예와 같은 삶을 시작하게 된다. “모든 것이 풍부한데도, 너희가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까닭에, 너희는 굶주림과 목마름과 온갖 궁핍 속에서, 주님께서 너희를 치라고 보내시는 너희의 원수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28,47-48) 오직 기억만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하고, 하느님 밖에 있는 구원의 해결책은 모두 우상임을 일깨워준다. 우상숭배는 망각한 사람들에게 닥치는 징벌이다. (cf.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역사는 왜곡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교회가 가르치는 십계명은 계약의 또 다른 면으로서, 하느님 자비의 윤리적 측면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었을 때, 율법은 그들이 받은 은총에 덤으로 받은 것이다. 십계명은 기억의 산물이기에(6,1-12) 대대손손 전해져야 한다. 기억은 마음속에 새겨진 살아있는 법규와 전통과 법령에 우리를 단단히 묶어준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너희 정신에 새기고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11,18)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 존재에 구원 계획이라는 선물을 묶어두셨다. 교회와 우리 각자의 역할의 토대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며 당신 사랑에 우리를 묶어두셨다는 확신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가 기억으로 넘쳐야 할 이유이다. 교회의 기도는 성령 안에서 성자께서 이룬 성부 하느님의 구원을 늘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사도신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진리뿐만 아니라 우리 구원의 역사 또한 집약되어 있다.

 

3. 우리는 기억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는 특히 그렇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너희에게 주시려고, 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이 있고, 너희가 채우지 않았는데도 이미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파인 저수 동굴들과, 너희가 가꾸지도 않은 포도들과 올리브 밭이 있다. 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6,10-12; 8,11-14)

 

기억의 은총을 청하면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현명하게 선택할 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과 우상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 또한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가 들려올 테니까.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15,15)

 

주님께서 기억을 환기시키는 안내자, 곧 모세에게 주신 같은 은총을 당신 교회에도 주시기를 청하자. 아무 기억도 없이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인 우상들로 우리 기억의 눈이 결코 어두워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억함으로써만 젊은 시절의 순정(예레 2,1-13)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가 겸손되이 간구한다면,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셨던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기억의 은총을 일깨워 주실 것이다. 마리아께서는 마카베오의 용감한 어머니처럼 조상들의 언어(2마카 7,21.27), 우리가 예전에 배운 언어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친숙한 언어로 우리 귀에 하느님 말씀을 속삭이시는 분, 마리아의 온화함과 애정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길 청하자. 그러면 우리는 악마가 속삭이는 달콤한 말을 물리치고 그의 유혹을 경멸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수련 묵상 길잡이, 129~138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