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1. 우리가 불만을 갖게 되는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우리가 불만을 갖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만들어주신 이미지와 자신의 야심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완벽하기를 하느님께서 바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종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하지만 이 구절의 번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어 ‘teleioi’완전함’ ‘완벽함이 아니라, ‘온전함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를 부담스럽게 짓누르는 요구가 아니라 하나의 약속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내적 분열이 사라지고 온전해질 수 있다는...

 

2. 사람들은 신앙심이 부족해서, 규율을 잘 지키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도 불만이라고 하고. 그러면 이렇게 되물어 보자.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게 뭘까?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독실한 사람으로 보이길 하느님께서 원하실까, 아니면 이것은 그저 나 자신의 욕심일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반듯하게 생활하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우리가 자신의 약점을 자각하고 항상 하느님을 찾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로움에 의탁하기를 바라실까?...”

 

우리는 결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도달할 수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 체념해도 된다거나,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발전하고 개선하려는 의욕은 절대적으로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미워할 만큼 압박감을 느끼지는 말아야 한다.

 

3.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거룩함은 우리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우리 자신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어 ‘hagios’, 거룩함세상의 어떤 힘에도 영향 받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하느님께서 허락한 본래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cf. 우리가 불만을 갖는 원인을 떠올려 보자. 자기 자신과 영적인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자기만의 관념, 우리가 스스로 규정하는 내면의 규칙에 따라 우리 마음을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는 성실하게 기도하고, 특정한 능력을 습득하며, 영적인 길로 반듯하게 나아가야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이러한 내면의 규칙들이 비종교적인 방식으로도 표현된다. 이를테면 매일 몇 킬로미터를 조깅해야 한다, 건강해지려면 이것만 먹고 저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중을 기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등으로 말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이런 모든 규칙들의 노예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 5,1; 2코린 3,17)

 

4. 우리가 아주 고요해지고 내면의 고요한 공간과 닿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를 인식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인식하면 우리의 영혼이 원하는 것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동일해진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 속에서 내면의 깊은 평화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그 어떤 외적 요인도 우리를 그런 만족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덮어씌운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다. 도대체 하느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 안젤름 그륀,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204~209; 219~220쪽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