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신비

 


1. ‘어둠은 실존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어둠은 실은 빛의 부재입니다. 어둠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것이 곧 어둠입니다. ‘도 마찬가지입니다. 악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이 곧 악입니다. 따라서 선의 결핍으로 다른 선의 결핍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선의 결핍으로 또 다른 선의 결핍에 대항했다가는 선의 결핍이 증폭될 뿐입니다. 오직 충만한 선만이 선의 결핍인 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악을 악으로 되갚으려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악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생명의 몸살을 겪게 되는 자연 발생적인 현상, 자연악이 있습니다. 지진, 해일, 태풍, 홍수 등이 자연악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인해 발생되는 현상, 인간악이 있습니다. 탐욕, 교만, 질투,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말 등이 인간악입니다. 자연악이든 인간악이든 악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2.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생명의 몸살을 겪게 되는 자연 발생적인 자연악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남용으로 인해 파생된 인간악으로 인해 존재자들은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는 것은 생태계와 동료 인간들 때문이지 하느님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 안에서도 우리를 선()으로 이끄십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사는 이 인생,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요. 고통은 끝내 그 사람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종적 포괄자(하느님)를 찾게 만듭니다. 식당에서 문제가 생기면 종업원에게 이 집 사장, 당장 나오라고 해!”라고 고함지르듯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찾아 나서지요. 이런 게 고통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게 아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당신께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고통의 여정 속에서도 하느님의 평화(필리 4,7; 요한 14,27)를 간직한 나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