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이라는 고을

 

 

성경 속에서 나인이라는 고을이 한 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리고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가 어떤 사건의 장소를 언급하는 몇 번 안 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고을이 나자렛에서 남동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작은 헤르몬산 자락에 있었다고 믿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나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알지요. 그분은 그분이 그곳에 가셨을 때에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일이지요.

 

오늘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복음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나인이라는 고을로 들어가는데, 성문에서 장례행렬과 딱 마주칩니다. 과부와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와 그분이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 어떤 기대감이 감돕니다. 그때 예수님이 관에 손을 대자, 관을 메고 가던 이들이 그분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들은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외아들을 잃은 과부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하십니다. 그러자 그곳은 희망과 연민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젊은이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시는데, 모든 이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루카복음 7장은 여기에서 끝났습니다만,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다니던 우리를 돌아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작은 고을로, 우리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건드리시니 잠깐 멈추어 서서 기다려봅시다. 그분의 현존에는 치유와 회복과 구원이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비탄에 빠진 과부의 장례 행렬처럼 내 삶도 주변이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이 일 저 일로 뛰어다니느라 주님을 잊었다가 갑자기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감사의 정을 느끼며, 나는 다시 주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내적 변화를 느낄 땐, 잠깐 멈추어 서서 그분의 현존이 나를 가득 채우게 허락하십시오. 그분이 나를 어루만지며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게...(169월 말씀지기 묵상 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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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면, 나도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고백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요한 주교님의 강론입니다.

 

숱한 파도와 험한 풍랑이 위협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들이 우리를 삼켜 버릴까 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바다가 성낸다 해도 그것은 바위를 쪼개 버릴 수 없습니다. 파도가 탑처럼 높이 치솟는다 해도 예수님의 배를 삼켜 버릴 수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죽음입니까?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혹은 유배생활입니까?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혹 재산의 손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나에겐 이 세상의 무서운 것들이 멸시할 만한 것이고, 그 좋은 것들도 웃어넘길 만한 것들입니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재화를 탐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의 선익 때문이 아니라면, 죽음도 겁내지 않고 살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현재 일어나는 일을 여러분에게 유의시키고 여러분이 확신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바입니다.

 

주님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 편집)고 말씀하셨다면, 사랑으로 묶인 이 무수한 백성 가운데 주님이 계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분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 나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분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지팡이요, 보호이며, 나의 잔잔한 항구입니다. 그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파도가 나를 대항하여 일어서고, 바다와 통치자의 분노가 나를 거슬러 밀려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거미 한 마리에 불과합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제 뜻이 아니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루카 22,42 참조)

 

이것이 나의 보루이고, 이것이 나의 움직임 없는 바위이며, 이것이 흔들림 없는 나의 지팡이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나는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해 주신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분께 감사드릴 뿐입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독서기도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