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 천주교,  ‘재의 수요일’로 사순시기 시작 -
 
 
오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재의 수요일’로 사순시기를 시작한다. ‘사순시기’는 매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로, 그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모든 가톨릭 신자는 머리에 재를 얹는 ‘재의 예식’으로 참회와 회개를 다짐한다.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은 ‘흙에서 왔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다.
 

 
 
◎ 사순시기의 의미와 유래
 
사순[四旬]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날인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전까지다. 이 시기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슬픔의 때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죄를 씻고 새 사람이 되는 은혜의 때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는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교회가 재의 수요일에 읽는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이 진리를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신약성경, 코린토 2서 5장 21절)
 
* 40일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전날까지 46일에서 주일을 뺀 40일이다. 
 
◎ 숫자 ‘40’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의 일을 준비하는 수련기간을 뜻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과 홍해의 기적 이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느님 체험을 했으며, 예수께서도 전도활동에 앞서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며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셨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신자들은 최후의 만찬, 예수 수난,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 3일’만을 지냈으며, 오늘날처럼 40일의 기간이 결정된 것은 니케아 공의회(325년) 때의 일이다. 전통적으로 사순시기는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최종기간이었으므로 더욱 경건하게 지냈다. 옛 사순시기 성가의 한 구절은 이러한 정신을 잘 보여준다. “말과 음식과 음료를 삼가고, 잠과 놀이를 더 줄이세. 늘 깨어 지키세”(Utamur ergo parcius,/ verbis cibis et potibus,/ somno, iocis et arctius/ perstemus in custodia).
 
사순시기에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자주색 제의(祭衣)를 입는다. 신자들은 기쁨의 노래인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하지 않고, 성가대 찬송이나 화려한 오르간 독주도 자제한다. 이 시기는 특히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실천하는 때이기도 하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단식은 그릇된 욕망을 멀리하게 하며, 자선은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사순시기 담화를 통해 “모든 가정과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영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고 영혼을 살리는 모든 것 안에서 자라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전통은 6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사제는 참회의 상징으로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한다. 
 
‘재의 예식’ 때 사제는 나뭇가지를 태운 재에 성수를 뿌려 축복한 다음,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재를 얹으며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기 3장 19절)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코 복음서 1장 15절)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은 슬픔과 참회의 표현이었다(사무엘 하권 13장 19절 참조). 오늘날에도 신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언젠가는 한 줌 먼지로 돌아가야 할 자신의 숙명을 기억하며 재의 예식을 거행한다.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 예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날 사용하는 재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축복했던 나뭇가지를 태운 것이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은 예수가 수난 직전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예수를 맞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나뭇가지를 꺾어들고 환호한 것처럼, 이날 신자들도 나뭇가지[聖枝]를 흔들며 예수의 대리자인 사제를 맞이한다. 기쁨의 상징이었던 나뭇가지는 1년 뒤 슬픔의 상징인 재로 변한다. 이 사실은 기쁨과 슬픔, 영광과 수난이 늘 함께한다는 진리를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 금식(禁食)과 금육(禁肉)
 
‘재의 수요일’에 모든 신자들은 금식재와 금육재를 의무로 지킨다. 금식재[禁食齎]란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점심식사는 평소대로 하되 저녁식사는 요기 정도만 하는 것을 말한다. 금육재[禁肉齋]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재의 수요일과 모든 금요일에 지켜야 한다. 금식재는 만 18세 이상 60세까지,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지킨다. 가톨릭 신자가 금식재와 금육재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날은 ‘재의 수요일’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틀이다.
 
 
◎ 가톨릭 신자들의 사순시기 실천
 
사순시기 날짜는 부활대축일(부활절)을 기준으로 해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대략적인 시기는 보통 3-4월이다. 이때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불교의 동안거처럼 바깥출입을 삼가지는 않는다. 대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생활 속에서 속죄와 회개를 실천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실천들은 다음과 같다.
 
1) 자선: 사순시기가 되면 한국교회의 각 교구와 지역 성당에서는 이웃돕기를 위해 해마다 사순 저금통 모으기, 사랑의 쌀 한줌 모으기, 헌혈 캠페인 등을 실시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사순시기 담화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참회행위, 곧 기도와 자선과 단식 중 단식을 통한 이웃사랑을 강조했다. 가톨릭 원조기구인 한국 카리타스(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매년 사순시기에 ‘사랑의 단식재’와 ‘공동헌금의 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2) 고해성사: 하느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화해를 청하는 ‘고해성사’는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전통이다. 그런데 사순시기에 성당에 가면 저녁 늦게까지 고해소 앞에 줄지어 선 신자들의 행렬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모든 신자들은 교회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고해성사는 신자 개개인이 하느님 앞에 쌓은 공로를 셈한다는 의미에서 판공(判功)이라고도 부른다.
 
3) 십자가의 길: 천주교 성당이나 성지에 가면 예수의 수난을 소재로 한 14개의 조각을 볼 수 있다. ‘14처(處)’라 불리는 이 미술품은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 중 하나인 ‘십자가의 길’을 위해 설치된 것이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14개 사건을 묵상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1-2세기 신자들이 빌라도 관저에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지나간 길을 따라 걸으며 기도한 데서 비롯되었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특별히 사순시기 매주 금요일과 성 금요일에 하도록 권고된다.
 
 
♣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문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주교회의 홈페이지 보도자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