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천주교회(ST.PAUL CHUNG HASANG KOREAN CATHOLIC CHURCH)

btnWebguideG4.JPG btnWebQtnG2.JPG
  • 오늘방문:
    401
  • 어제방문:
    764
  • 전체방문:
    1,764,105

현재 접속자
    회원: 2,927
글 수 226
번호
제목
글쓴이
226 아우슈비츠의 성자(聖者)
[레벨:6]achreios
29   2018-09-04 2018-09-04 09:45
+. 평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 굶어 죽어가는 절망적인 사람들, 그러나 살아있는 한 인간은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던 그들. 어느 날 그들 중 한 명이 수용소를 탈출했고 대신 열 명이 아사형(餓死刑)을 받게 되었을 때, 수감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죽도록 뽑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처자식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수용소 소장이 오랜 시간을 끌면서 마침내 열 명을 뽑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부끄럽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기들이 안 뽑혔기에, 이번에는 피할 수 있었기에 말입니다. 그때 느닷없이 죄수 한 명이 대열에서 빠져 나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도대체 이 폴란드 돼...  
225 마음의 거짓된 평화
[레벨:6]achreios
51   2018-08-28 2018-08-28 12:17
+. 평화 자기 자신을 책하는 사람은 어떤 불편이건, 손해건, 모욕이건, 어떤 괴로운 일이건 자기에게 닥칠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그런 것을 자기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 때문에 조금도 마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보다 더 평화로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어떤 이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형제가 나를 괴롭히지만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가 나를 그렇게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책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세밀히 반성해 본다면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나 태도로 그런 계기를 유발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가 현재 그 모...  
224 마음 불안의 이유
[레벨:6]achreios
85   2018-08-21 2018-08-21 03:02
+. 평화 형제 여러분,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을 때 흔히 그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아무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귀로 흘려버리지만, 어떤 때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불안해지고 괴로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차이점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한 가지가 다른 모든 이유의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그 차이점은 그것을 들을 때 듣는 그 사람의 내적인 마음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 기도와 묵상 중에 있다면 그때 마음 상하게 하는 형제를 가장 쉽게 참아 줄 수 있고 평온도 유지합니다. 이것은 형제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있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잘 참아 내거나 또는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그를 제일 못난 놈...  
223 신앙인이 되는 과정
[레벨:6]achreios
107   2018-08-14 2018-08-14 13:15
+. 평화 1. 성경에서 물은 때때로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이 있던 배에 올랐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것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며 ‘너희들도 할 수 있으니 물 위를 걸어보라’고 초대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초대에 응했지만, 곧바로 물의 세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속으로 빠져들었으며, 예수님은 위기에 처한 베드로를 구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습니다. 이 내용은 신앙인이 참 평화를 누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려줍니다. 2. 처음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의지대로 내가 배운 대로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  
222 주님의 시선에 머물기
[레벨:6]achreios
123   2018-08-07 2018-08-07 12:09
+. 평화 어느 시인의 노래입니다. “참사랑은 그대를 바람 속으로 내던져 그대에게 불을 지른다. 그대가 불사조처럼 온 하늘을 불태우고 밤을 이글거리게 만든다. 그 사랑은 그대를 들불처럼 풀어놓아 그대가 만지는 모든 것을 불타오르게 하기에, 그대는 오직 달릴 수밖에 없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시인은 그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지녔던 사랑입니다. 그물을 버린 순간부터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이는 바람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 그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며 무엇이든 주님을 따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으려고 했지요. 비록 예수님이 베드로를 구해 주셔야 했지만, 그가 배 밖으로 뛰어나간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221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레벨:6]achreios
141   2018-07-31 2018-07-31 12:52
+. 평화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바오로의 사랑을 저버리고 악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연합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들을 심하게 꾸짖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가 아닙니까?”(2코린 7,3 참조) 사랑이 지닌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은 멸시를 당할 때라도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합니다. 사랑할 때 위험이 생기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오로의 사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나는 위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쁨에 넘쳐 있다” 앞에 “모든 환난에도”라고 말합니다. 바오로에 의하면, 코린토인들이 자기에게 가져다 준 즐거움이...  
220 하느님의 성전
[레벨:6]achreios
185   2018-07-24 2018-07-24 11:47
+. 평화 “나와 아버지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오시는 분께 여러분의 문을 열고 영혼을 개방하며 내심을 넓히십시오. 그러면 단순성의 재화와 평화의 보화와 은총의 감미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넓히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영원한 빛의 태양을 맞으러 나가십시오. 주님의 참 빛은 모든 이 위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기 창문을 닫아 놓는다면 그는 그 영원한 빛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리스도는 들어오시지 못하고 밖에 계실 겁니다. 주님은 원하기만 하신다면 들어가실 수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곳에 밀고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으시며 마음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견고하면 온 집은 견고해지고, 신앙이라는 문을 통하...  
219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구원
[레벨:6]achreios
186   2018-07-10 2018-07-10 13:46
+. 평화 신앙심과 종교심은 다릅니다. 신앙에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종교심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둘의 차이점을 아시는지요?... 종교심은 자신이 좋아 신을 찾아나서는 모습입니다. 혹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짓눌려 두려움 때문에 그 대상을 흠숭하는 상태입니다. 동기도 목표도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신앙의 동기와 목표가 하느님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시작도 마침도 내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신앙이 자라려면 먼저 자신을 초대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 초대에 응답하기 위한 자신의 생각과 삶을 포기하는 태도가 따라야 합니다. 종교심과 신앙심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과 결과는 현격히 다릅니다. 비록 종교심...  
218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
[레벨:6]achreios
202   2018-07-03 2018-07-03 12:26
+. 평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영원한 존재만이 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이 줄 수 있는 그것을 사람의 아들이 주겠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 곧 하느님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무한한 자유를 갈구하지만 어딘가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에 매이게 되고 그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데, 그때 그 밖의 다른 것은 전부 배경이 됩니다. 부모 손잡고 수도원에 견학 온 꼬마가 부모 손잡고 온 다른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와 장난칠 때, 그 아이의 관심사는 온통 그 여자 아이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도 수도원도 그 꼬마에게는 모두 배경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마...  
217 지혜로운 사람의 눈이 바라보는 곳
[레벨:6]achreios
219   2018-06-26 2018-06-26 09:11
+. 평화 영혼이 자신의 눈을 들어 높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는 악의 그림자가 전혀 없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존재하는 모든 이들도 그러합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전혀 어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 자기 시선을 머리이신 분, 곧 만물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두는 사람은 온갖 덕과 온갖 선한 것에다 시선을 둡니다. 한편 순수한 투쟁에 임하고 참된 것들을 관상하는 데 몰두해 있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맹목적이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도...  
216 살아있는, 또 하나의 맛있는 빵!
[레벨:6]achreios
402   2018-06-12 2018-06-12 11:28
+. 평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식인종인가? 좋다. 우리가 식인종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먹이려면 소 열 마리 분, 아니 백 마리 분은 족히 들 텐데, 저 양반 체격이 코끼리만한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유다인들은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을 연상했고, 예수님도 직접적으로 당신의 몸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죽은 자를 일으켰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으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 말씀을 무시했을 텐데,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한 번 더 되새겨봅니다.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면서... 먼저, 어떻게 ...  
215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레벨:6]achreios
371   2018-05-29 2018-05-29 07:33
+. 평화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애타게 갈망할 뿐입니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망한다면 장차 보게 될 것에 이를 때 그것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어떤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넣을 것이 너무 많다면 그 그릇이 자루이건 부대이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넣을 것이 너무나 많고 담아 넣을 그릇은 작을 때 그 그릇을 늘려서 용량을 늘립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을 늦추심으로써 그 갈망을 더 크게 하시고, 갈망을 더 크게 하심으로써 우...  
214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
[레벨:6]achreios
454   2018-05-22 2018-05-22 04:55
+. 평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고, 군중도 이 말씀을 예수님의 살덩어리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고 하셨고, 오병이어 사건 이후 당신을 찾아 온 군중에게는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때 사용된 당신의 몸을 지칭하는 단어가 다릅니다. 우리말에서도 ‘몸’과 ‘살’로 구분해서 사용하듯이 최후만찬 때에는 그리스어로 ‘소마’에 해당되는 단어를 쓰셨고...  
213 영적인 배고픔이 먼저 채워져야 살 수 있는 존재성
[레벨:6]achreios
446   2018-05-22 2018-05-22 04:53
+. 평화 오늘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 갈릴래아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야 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로마의 식민지 국민으로 고생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부패한 유다 귀족의 엄청난 착취였습니다. 당시 갈릴래아 사람 대다수는 소작농이었고, 대부분이 지주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수확이 좋지 않으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빚을 갚으려면 풍년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엔 온 가족이 종이 되거나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끼니조차 해결되지 않는 갈릴래아 소작농들의 처지에서 예수님의 출현은 글자 그대로 배고픔과 가난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사...  
212 화해의 직분
[레벨:6]achreios
585   2018-05-10 2018-05-10 11:33
+. 평화 성령의 보증과 부활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이 이미 실현된 듯 그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제 육체를 따라 이해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사람들이고 육체의 부패에서 해방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어 우리는 모든 것을 살게 해 주시는 그 말씀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죄의 지배 아래 살 적에 우리는 모든 것을 살게 해 주시는 그 말씀으로 이제 그리스도의 정의가 우리를 차지하게 된 후에 우리는 옛 부패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아무도 육체 안에 곧 육체의 연약함 속에 갇혀 부패의 종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  
211 파스카 축제의 알렐루야
[레벨:6]achreios
554   2018-05-08 2018-05-08 15:22
+. 평화 하느님께 대한 찬미는 현세 생활에서 우리 묵상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후세 생활에서도 찬미는 우리 기쁨의 영원한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현세 생활에서 그러한 묵상으로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후세 생활에 들어갈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 생활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한 그분께 청원합니다. 우리의 찬미는 기쁨으로 표현되고 우리의 청원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미래에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분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기에 우리는 희망 안에서 기뻐하지만 약속하신 것을 아직 받지 못했기에 갈망으로 탄식합니다. 약속받은 것을 이룰 때까지 그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침내 탄식은 끝나고 찬미만이 들...  
210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다
[레벨:6]achreios
710   2018-04-19 2018-04-19 10:13
+. 평화 요한복음 12장에서 우리는 보통의 ‘기름 부음’과는 다른 중요한 차이를 두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말은 공식적으로 지도자임을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주로 임금이 기름 부음을 받았고, 이렇게 기름부음 받은 이를 히브리어로는 ‘메시아’,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순 나르드 향유를 부어드린 일도 어떤 의미에서 그분께서 ‘기름 부음 받은’ 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기름 부음과는 중요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할 때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게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요 임금이 되시는 게 수난 이후부터임을 의미합니다. 수난과 십자가 없이 예수님은 그...  
209 전례의 본질, 전례 안에서 실현되는 교회의 지속적인 구원 활동
[레벨:6]achreios
775   2018-04-18 2018-04-18 12:13
+. 평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며”(1티모 2,4)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히브 1,1), 때가 차 당신의 아들 곧 사람이 되신 말씀을 보내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쳐 주도록 ‘육신과 영혼의 의사’가 되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가 되게 하셨다.(1티모 2,5 참조) 그분의 인성이 말씀의 위격과 결합되어 우리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화해의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느님께 충만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이 일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특히 당신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  
208 생명을 주는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십자가
[레벨:6]achreios
773   2018-04-17 2018-04-17 12:40
+. 평화 십자가는 죽음이 아닌 생명을 가져다주는 나무입니다. 어둠이 아닌 빛의 근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에덴의 낙원으로 들어가게 하며 여러분을 거기서 내쫓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왕이 사륜마차에 오르듯 그 나무에 오르시어 괴수인 마귀를 쳐부수고 그 폭군의 노예 상태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나무 위에서 마치 전투 중에 상처 입은 위대한 역전의 용사처럼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상처를 입어 우리 죄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사악한 뱀으로 인해 상처 난 우리 본성을 고쳐주셨습니다. 태초에 우리는 나무로 인해 해를 입었지만 이제 와서는 나무를 통해 생명을 찾았습니다. 옛날에는 뱀이 나무로 우리를 속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다른 나무로 그 반역자를 내쫓았습니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이 전환은 얼마나 놀라...  
207 그리스도의 승리
[레벨:6]achreios
1381   2018-04-05 2018-04-07 17:51
+. 평화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었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 1베드 3,18.21-22 -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