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천주교회(ST.PAUL CHUNG HASANG KOREAN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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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매정한 종의 최후
[레벨:6]achreios
24   2018-10-16 2018-10-16 22:07
+. 평화 어떤 사람이 나에게 200 데나리온을 빚졌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일당이니까 그 사람은 내게 200일 일당을 빚진 것입니다. 계산하기 편리하게 하루 일 당을 100불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내게 20,000불을 빚진 셈입니다. 20,000불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죠. 그런데 나에게는 나라 빚이 있습니다. 내가 갚아야 할 돈은 만 달란트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을 100불이라고 한다면, 한 달란트는 60만 불입니다. 한 달란트가 60만 불이라면, 만 달란트는 60억 불입니다. 내게 갚아야 할 돈 60억 불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한다 하더라도 빚에 대한 이자를 갚기에도 빠듯합니다. 어느 날 국가가 나를 불렀습니다. 당장 빚을 갚지 않으면 내가 가진 ...  
229 '부활의 주님'을 믿는 이들의 태도!
[레벨:6]achreios
40   2018-10-09 2018-10-09 11:57
+. 평화 퀴블러 로스 박사가 마이다넥의 유다인 강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는 어린이들이 수용되었던 막사에 신발과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참담하고 슬펐다. 그런데 나무로 된 막사의 벽에는 나비 그림이 가득 차있었다. 아이들이 손톱이나 자갈로 그리거나 새긴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이 나비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그 후 정신과 의사로서 수련과정을 거친 그녀는 죽어가는 이들을 25년간 상담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수용소의 나비 그림을 알아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자기들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을 나비로 표현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조차 죽음 앞에서 희망을 가지려 했다면, 하물며 부활의 주...  
228 아르자마스의 밤
[레벨:6]achreios
60   2018-10-02 2018-10-02 22:38
+. 평화 1896년 늦여름, 어느 가혹한 하룻밤이 톨스토이의 삶의 향방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시 그는 가장 원기 왕성한 때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마침내 그는 대작 <전쟁과 평화>를 탈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건장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두었으며, 유명세와 부(富)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한 거대한 작품을 완성한 데서 오는 깊은 만족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새로 산 땅도 볼 겸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사흘쯤 지났을까요? 톨스토이는 지친 가운데서도 휴일의 기분에 흠뻑 취한 채 아르자마스라 불리는 낯선 곳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는 마을 여관에 방 하나를 얻...  
227 혼인 예복
[레벨:6]achreios
88   2018-09-25 2018-09-25 21:09
+. 평화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초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이 보낸 이들을 박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의 올리브 나무에서 잘라내셨습니다.(로마 11,17 참조)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잔치에 불러들이셨습니다. 여기에서 ‘고을 어귀’는 성읍이나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초대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곳, 곧 이방인들을 초대했다는 뜻입니다. 이때 초대받기 위한 자격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나 만나는 대로’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이는 ‘혼인 예복’을 갖...  
226 아우슈비츠의 성자(聖者)
[레벨:6]achreios
111   2018-09-04 2018-09-04 09:45
+. 평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 굶어 죽어가는 절망적인 사람들, 그러나 살아있는 한 인간은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던 그들. 어느 날 그들 중 한 명이 수용소를 탈출했고 대신 열 명이 아사형(餓死刑)을 받게 되었을 때, 수감된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죽도록 뽑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처자식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수용소 소장이 오랜 시간을 끌면서 마침내 열 명을 뽑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부끄럽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기들이 안 뽑혔기에, 이번에는 피할 수 있었기에 말입니다. 그때 느닷없이 죄수 한 명이 대열에서 빠져 나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도대체 이 폴란드 돼...  
225 마음의 거짓된 평화
[레벨:6]achreios
121   2018-08-28 2018-08-28 12:17
+. 평화 자기 자신을 책하는 사람은 어떤 불편이건, 손해건, 모욕이건, 어떤 괴로운 일이건 자기에게 닥칠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그런 것을 자기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 때문에 조금도 마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보다 더 평화로운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어떤 이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형제가 나를 괴롭히지만 내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가 나를 그렇게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책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세밀히 반성해 본다면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나 태도로 그런 계기를 유발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가 현재 그 모...  
224 마음 불안의 이유
[레벨:6]achreios
157   2018-08-21 2018-08-21 03:02
+. 평화 형제 여러분, 사람은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을 때 흔히 그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아무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귀로 흘려버리지만, 어떤 때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불안해지고 괴로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차이점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한 가지가 다른 모든 이유의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그 차이점은 그것을 들을 때 듣는 그 사람의 내적인 마음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 기도와 묵상 중에 있다면 그때 마음 상하게 하는 형제를 가장 쉽게 참아 줄 수 있고 평온도 유지합니다. 이것은 형제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있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잘 참아 내거나 또는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그를 제일 못난 놈...  
223 신앙인이 되는 과정
[레벨:6]achreios
187   2018-08-14 2018-08-14 13:15
+. 평화 1. 성경에서 물은 때때로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이 있던 배에 올랐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것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며 ‘너희들도 할 수 있으니 물 위를 걸어보라’고 초대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초대에 응했지만, 곧바로 물의 세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속으로 빠져들었으며, 예수님은 위기에 처한 베드로를 구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습니다. 이 내용은 신앙인이 참 평화를 누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려줍니다. 2. 처음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의지대로 내가 배운 대로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  
222 주님의 시선에 머물기
[레벨:6]achreios
207   2018-08-07 2018-08-07 12:09
+. 평화 어느 시인의 노래입니다. “참사랑은 그대를 바람 속으로 내던져 그대에게 불을 지른다. 그대가 불사조처럼 온 하늘을 불태우고 밤을 이글거리게 만든다. 그 사랑은 그대를 들불처럼 풀어놓아 그대가 만지는 모든 것을 불타오르게 하기에, 그대는 오직 달릴 수밖에 없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시인은 그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지녔던 사랑입니다. 그물을 버린 순간부터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이는 바람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 그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며 무엇이든 주님을 따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으려고 했지요. 비록 예수님이 베드로를 구해 주셔야 했지만, 그가 배 밖으로 뛰어나간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221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레벨:6]achreios
225   2018-07-31 2018-07-31 12:52
+. 평화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바오로의 사랑을 저버리고 악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연합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들을 심하게 꾸짖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가 아닙니까?”(2코린 7,3 참조) 사랑이 지닌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은 멸시를 당할 때라도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함께 죽고 싶어 합니다. 사랑할 때 위험이 생기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오로의 사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나는 위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쁨에 넘쳐 있다” 앞에 “모든 환난에도”라고 말합니다. 바오로에 의하면, 코린토인들이 자기에게 가져다 준 즐거움이...  
220 하느님의 성전
[레벨:6]achreios
287   2018-07-24 2018-07-24 11:47
+. 평화 “나와 아버지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오시는 분께 여러분의 문을 열고 영혼을 개방하며 내심을 넓히십시오. 그러면 단순성의 재화와 평화의 보화와 은총의 감미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넓히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영원한 빛의 태양을 맞으러 나가십시오. 주님의 참 빛은 모든 이 위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기 창문을 닫아 놓는다면 그는 그 영원한 빛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리스도는 들어오시지 못하고 밖에 계실 겁니다. 주님은 원하기만 하신다면 들어가실 수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곳에 밀고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으시며 마음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견고하면 온 집은 견고해지고, 신앙이라는 문을 통하...  
219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구원
[레벨:6]achreios
308   2018-07-10 2018-07-10 13:46
+. 평화 신앙심과 종교심은 다릅니다. 신앙에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종교심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둘의 차이점을 아시는지요?... 종교심은 자신이 좋아 신을 찾아나서는 모습입니다. 혹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짓눌려 두려움 때문에 그 대상을 흠숭하는 상태입니다. 동기도 목표도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신앙의 동기와 목표가 하느님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시작도 마침도 내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신앙이 자라려면 먼저 자신을 초대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 그 초대에 응답하기 위한 자신의 생각과 삶을 포기하는 태도가 따라야 합니다. 종교심과 신앙심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과 결과는 현격히 다릅니다. 비록 종교심...  
218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
[레벨:6]achreios
297   2018-07-03 2018-07-03 12:26
+. 평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영원한 존재만이 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이 줄 수 있는 그것을 사람의 아들이 주겠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 곧 하느님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무한한 자유를 갈구하지만 어딘가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에 매이게 되고 그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데, 그때 그 밖의 다른 것은 전부 배경이 됩니다. 부모 손잡고 수도원에 견학 온 꼬마가 부모 손잡고 온 다른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와 장난칠 때, 그 아이의 관심사는 온통 그 여자 아이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도 수도원도 그 꼬마에게는 모두 배경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마...  
217 지혜로운 사람의 눈이 바라보는 곳
[레벨:6]achreios
315   2018-06-26 2018-06-26 09:11
+. 평화 영혼이 자신의 눈을 들어 높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는 악의 그림자가 전혀 없는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존재하는 모든 이들도 그러합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전혀 어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 자기 시선을 머리이신 분, 곧 만물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두는 사람은 온갖 덕과 온갖 선한 것에다 시선을 둡니다. 한편 순수한 투쟁에 임하고 참된 것들을 관상하는 데 몰두해 있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맹목적이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도...  
216 살아있는, 또 하나의 맛있는 빵!
[레벨:6]achreios
530   2018-06-12 2018-06-12 11:28
+. 평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식인종인가? 좋다. 우리가 식인종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먹이려면 소 열 마리 분, 아니 백 마리 분은 족히 들 텐데, 저 양반 체격이 코끼리만한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유다인들은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을 연상했고, 예수님도 직접적으로 당신의 몸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죽은 자를 일으켰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으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 말씀을 무시했을 텐데,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한 번 더 되새겨봅니다.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면서... 먼저, 어떻게 ...  
215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레벨:6]achreios
463   2018-05-29 2018-05-29 07:33
+. 평화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애타게 갈망할 뿐입니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망한다면 장차 보게 될 것에 이를 때 그것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어떤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넣을 것이 너무 많다면 그 그릇이 자루이건 부대이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넣을 것이 너무나 많고 담아 넣을 그릇은 작을 때 그 그릇을 늘려서 용량을 늘립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을 늦추심으로써 그 갈망을 더 크게 하시고, 갈망을 더 크게 하심으로써 우...  
214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
[레벨:6]achreios
545   2018-05-22 2018-05-22 04:55
+. 평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고, 군중도 이 말씀을 예수님의 살덩어리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고 하셨고, 오병이어 사건 이후 당신을 찾아 온 군중에게는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때 사용된 당신의 몸을 지칭하는 단어가 다릅니다. 우리말에서도 ‘몸’과 ‘살’로 구분해서 사용하듯이 최후만찬 때에는 그리스어로 ‘소마’에 해당되는 단어를 쓰셨고...  
213 영적인 배고픔이 먼저 채워져야 살 수 있는 존재성
[레벨:6]achreios
547   2018-05-22 2018-05-22 04:53
+. 평화 오늘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 갈릴래아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야 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로마의 식민지 국민으로 고생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부패한 유다 귀족의 엄청난 착취였습니다. 당시 갈릴래아 사람 대다수는 소작농이었고, 대부분이 지주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수확이 좋지 않으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빚을 갚으려면 풍년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엔 온 가족이 종이 되거나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끼니조차 해결되지 않는 갈릴래아 소작농들의 처지에서 예수님의 출현은 글자 그대로 배고픔과 가난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사...  
212 화해의 직분
[레벨:6]achreios
679   2018-05-10 2018-05-10 11:33
+. 평화 성령의 보증과 부활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이 이미 실현된 듯 그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제 육체를 따라 이해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사람들이고 육체의 부패에서 해방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어 우리는 모든 것을 살게 해 주시는 그 말씀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죄의 지배 아래 살 적에 우리는 모든 것을 살게 해 주시는 그 말씀으로 이제 그리스도의 정의가 우리를 차지하게 된 후에 우리는 옛 부패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아무도 육체 안에 곧 육체의 연약함 속에 갇혀 부패의 종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  
211 파스카 축제의 알렐루야
[레벨:6]achreios
673   2018-05-08 2018-05-08 15:22
+. 평화 하느님께 대한 찬미는 현세 생활에서 우리 묵상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후세 생활에서도 찬미는 우리 기쁨의 영원한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현세 생활에서 그러한 묵상으로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후세 생활에 들어갈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 생활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한 그분께 청원합니다. 우리의 찬미는 기쁨으로 표현되고 우리의 청원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미래에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분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기에 우리는 희망 안에서 기뻐하지만 약속하신 것을 아직 받지 못했기에 갈망으로 탄식합니다. 약속받은 것을 이룰 때까지 그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마침내 탄식은 끝나고 찬미만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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