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천주교회(ST.PAUL CHUNG HASANG KOREAN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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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27 관계
[레벨:7]BULL
10492   2009-06-10
사람은 혼자서 살지않는 이상 누군가와 반드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부부, 가족, 교우들... 관계라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 영향은 좋은 영향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또 다 른 곳에서 서로를 기도 중에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26 변화
[레벨:7]BULL
9888   2009-06-04
금(金)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아야 그 가치를 발휘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또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랑이 변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사랑이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울 때 매달리고, 편안할 때 하느님을 멀리하 는 것이 우리의 나약한 사랑이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 느님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않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 한다. 조석(朝夕)으로 바뀌는 내가 변해야 한다. 나의 작은 이익을 따라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는 나의 마 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25 희망
[레벨:7]BULL
10558   2009-05-28
불교에서는 도반(道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깨달음을 얻을 목적으로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료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가톨릭 용어로 말하자면 형제자매라는 뜻과 같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같은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공동목적을 향해 함께 가 는 동료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사에 참례한 옆 자리에 있는 신자들이 도반이 나 형제자매로 느껴지는가? 같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길, 같은 목표를 향해서 걸어가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때에야 진정한 도반, 진정한 형제자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승천주일에 이런 희망 하나를 가져 본다. 같은 길을 걸어가자!  
24 용서 2
[레벨:7]BULL
10515   2009-05-17
<전쟁 중에 부모님을 찾아가던 신부가 어느 집 앞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군인을 보 았는데, 그 군인이 죽기 전에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청했다. 군인은 조금 전에 그 집 에 있는 노부부를 죽였다고 고백하였다. 신부는 죽어가는 군인의 손을 잡고 사죄경을 외웠다. 잠시 후에 군인은 평온한 얼굴로 죽었다. 그런데 그 집은 신부의 부모님이 사는 집이었다.>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용서는 사실 괴로운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괴로움과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과 용서 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23 나의 하느님
[레벨:7]BULL
10365   2009-05-10
사람들은 하느님을 저마다의 하느님으로 만들고 있다. 오직 나만을 사랑하시는 하느 님, 내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도 다 이해하시는 하느님, 때로는 내가 세상 것에만 더 관심이 있어도 다 용서해주시는 하느님, 하느님보다도 재물을 더 사랑해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매일 매일을 살면서도 아무런 반 성도 없이, 이정도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되는 한 없이 넓으신 하느님! 왜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내가 믿는 하느님과 다른가?  
22 착한목자
[레벨:7]BULL
9566   2009-05-04
처음 입학할 때 신학교의 이름이 선목(善牧) 신학교였다. 라틴어로 BONUS PASTOR이라 고 불렀다. 학장신부님으로부터 착한 목자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기를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서 착하지는 못하지 만 목자가 되었다. 그리고 양들을 만났다. 참 다양한 부류의 양들을 매일 만난다. 착 실한 양, 불성실한 양, 목자를 힘들게 하는 양, 목적을 상실한 양.... 때로는 이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과연 착한 목자인가? 나는 내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 고 있는가?  
21 증인
[레벨:7]BULL
9491   2009-04-30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때가 있었다. 이 제는 오래전 일이 되었다. 이제는 천주교 신자들도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은 무늬만 신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주일 성당으로 오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고 더 악하게 살지는 않는가? 믿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표양이 되지못 하고 오히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반목하고 분열을 가져온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부활을 살아야 한다. 내가 부활의 삶을 살아야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떼어 나누어 줄 때 가능한 것이다. 우 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20 평화
[레벨:9]BULL
13809   2009-04-19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 가정안에서도 내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없는 평화를 원한다. 이 평화는 힘에 의해 주어지는 평화가 아니다. 우리 공동체는 그러한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갈 때만이 얻을 수 있는 평화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맛보고 있는가? 모두가 자기를 놓을 때, 예수님의 평화를 맛볼 수 있다. 그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모두가 자기를 놓고 예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할 때 말이다.  
19 부활
[레벨:7]BULL
13519   2009-04-13
부활을 기뻐한다고? 부활이 기쁜 이유가 무엇일까?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왜 내가 기뻐하는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들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 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우리 안에 미움이 있다면, 그로인해서 서로가 반목한다면, 서로 만나기가 불편하다면 내 마음 안에는 아직 부활의 기쁨이 없는 것이다. 부활하 신 예수님을 서로의 만남에서 찾아야 한다. 사랑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부활하신 예 수님을 찾아야한다. 우리 공동체에는 부활이 왔는가? 그렇다면 이웃형제들의 얼굴을 보자.  
18 그 길
[레벨:7]BULL
12962   2009-04-04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간다고 한다. 그 길은 구원을 위한 길이다. 이천년 전 예수님께 서 그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걷고자 한다. 그런데 그 길이 무슨 길인지를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 길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길인 것으로 착 각하는 것은 아닌가? 구원을 위한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세상과는 거꾸로 가는 길이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을 버리는 길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님께서 가신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17 섬김
[레벨:7]BULL
13856   2009-03-29
성당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직책을 맡아왔다고 한다. 나름대로 아는 것도 많다. 흔히 열심한 신자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이야기를 오래할수록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신앙인으로서의 향기가 없다. ‘자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을 해 도 ‘내’가 한 것이고, 결과가 좋아도 ‘내’가 열심히 한 덕분이고, 신앙공동체 안 에서의 모든 일이 모두가 똑똑한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앙공동체 는 섬김의 공동체이다. 그런데 ‘나’를 내세워서는 섬김이 될 수 없다. 섬기기 위해 서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예수님을 섬 길 수 있고, 이웃을 섬길 수 있다. 섬김이 없으면 봉사도 사랑도 없다. 나는 무엇하 는 사람인가?  
16 당당함
[레벨:7]BULL
13609   2009-03-21
자기반성이 없는 신앙인은 늘 당당하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 하 느님은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에 다 이해하실 것이라고, 또 그것을 당당하게 요 구한다. 내가 빛이 아니라 어둠을 걷고 있는 이유도 하느님께서는 다 아시고 이해하 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희망은 나의 착각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아니라, 오로 지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이다. 그 당당함에 할 말이 없다. 하느님도 그 당당함 에 기막혀하시는 것은 아니신가? 도대체 누가 하느님인가?  
15 성전(聖殿)과 공소(公所)
[레벨:7]BULL
13144   2009-03-14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아직도 공소가 많이 있다. 매주일에 신부가 가기도 하지만, 격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공소에는 미사를 드릴 수는 있지 만, 성체를 모셔 놓지는 않는다. 공소에 있는 신자들은 주일미사를 대신하여 공소예 절을 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본당과 공소의 차이는 성체를 모신 감실이 있느냐, 없느 냐로 구분되기도 한다. 성전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다.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 성전이 라면 우리 자신들도 성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산다면,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면 우리 자신이 성전이다. 내 안에는 진정 하느님이 계시는 가?  
14 안주(安住)
[레벨:7]BULL
13353   2009-03-09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도전을 피하게 된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를 두려워한 다. 그래서 편안함을 찾고 또 한곳에 정착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안주하려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내가 만든 신앙의 틀 안에서 큰 변화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한다. 신앙생활은 편안할 수가 없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는 체험도 없다. 신앙은 모험이다. 신앙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다. 우리가 매 주일 미사를 시작하면서 참회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지금 새 사람으 로 변화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예 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진 낡은 신앙태도를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13 예수없는 십자가 2
[레벨:7]BULL
13438   2009-03-02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다.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치욕적인 사형도구가 십자가 이다. 이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박히셨다.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 십 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와 예수님을 따로 생각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십자가만 보이고 거기에 매달리셨던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소위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없 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님을 믿고 따르려는 추종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2 포기
[레벨:7]BULL
13339   2009-02-22
아프리카에는 원숭이를 잡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입구가 아주 작은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넣어 놓는다. 그러면 원숭이는 사람이 없는 틈 에 항아리 안에 손을 집어넣고 음식을 꺼내려고 하지만, 움켜진 손은 입구가 작은 항 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달려오 지만, 원숭이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달아날 수가 없다.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을 잔뜩 움켜진 손을 펴면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있게 되고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달아날 수가 있는데도 원숭이는 이것을 모른 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 이 이 원숭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아서 영원한 생명을 놓...  
11 열성
[레벨:7]BULL
13225   2009-02-15
성당에서 열성적인 신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협조적이 다. 그런데 가끔씩 열성적인 신자들의 모습에서 뭔가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된다. 처 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부족한 것 은 믿음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에게서 믿음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만,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 안으로 그대 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세상일을 열심히 하듯이 교회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 러나 믿음이 없는 열성은 위험하다. 열성이 인정받지 못할 때, 자신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믿음이 없는 열성은 순명도 없고, 사랑도 없게 된다. 열성은 믿음을 바탕으로 할 때,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lucas 생각  
10 성장
[레벨:7]BULL
13436   2009-02-09
미국도 한국도 요즘 가뭄이라고 한다. 식물은 수분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가뭄은 식물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다니기에 불편해도 비가 고마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신앙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나의 일부였던 신앙 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 신앙의 성장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장한다. 하 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용기로 성장한다. 또한 신앙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성 장한다. 모두가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어려움과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신앙은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 앙도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9 바친다는 것
[레벨:7]BULL
13209   2009-02-01
사람들은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강하다. 그래서 자기 것을 내어놓는 것이 쉽 지 않다. 그런데 신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내어놓겠다는 약속이다. 그것도 일 부가 아니라 온전히 내어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늘 갈등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어놓아야 하는가? 다 내어놓고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 친다는 것은 그냥 말 그대로 바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또 무 엇을 하느님께 바치는 삶을 살고 있는가?  
8 부르심 1
[레벨:7]BULL
13859   2009-01-25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단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부르심에 응답을 하였 다는 것이다. 성당으로, 신앙으로 오게 된 계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 그리고 이 자리에, 지금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르심에 합당한 응 답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목적없는 부르심은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응답하고 있 는가? 적어도 ‘저 사람은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는가?’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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