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천주교회(ST.PAUL CHUNG HASANG KOREAN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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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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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레벨:6]achreios
7147   2017-04-26 2017-05-03 13:03
+. 평화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루카 12,19-20) 2001년 9·11 테러 사건의 희생자 가족과 구조대원들을 대상으로 사목을 한 사제가 강론 중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내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에 대한 주도권이 없다는 것! 이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고나 천재지변과 같은 대형참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위험이나 몰락을 겪을 수도 있고, 내일이 일대 전환점이 되어 선을 추구하게 되고 행복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139 사랑과 기쁨의 길! (6)
[레벨:6]achreios
7189   2017-04-19 2017-04-19 14:01
+. 평화 소화 데레사는 살면서 참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생의 말미에 그녀는 1년 반 동안 굉장히 깊은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하늘’, 즉 다가올 행복과 예수님을 믿으면서 기뻐했는데, 어느 순간(1896년 부활)부터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 너무나 힘들고 캄캄해졌습니다. 그녀는 결코 신앙을 잃지 않았지만, 신앙은 고통스러운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피로 사도신경을 적어 품에 꼭 지니고 다녔습니다.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믿었던 모든 것 · 기쁨이었던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고, 죽은 후 자신은 무(無)에 떨어지고,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라는 의심과 유혹으로 괴로워했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녀는 투쟁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것은/ 이 시련이 그...  
138 생명과 기쁨의 길! (5)
[레벨:6]achreios
8098   2017-04-12 2017-04-17 11:34
+. 평화 오늘은 시련의 순간에 ‘어떤 물음이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종의 내적인 변화 곧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답을 전부 얻으려 하지 말고 일부 어둠을 인정하는 것’, ‘완전히 이해하려 들지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복음의 어떤 가르침을 살아내야 하는 걸까? 오늘 내가 살아야 할 신앙행위, 희망행위, 사랑의 진보는 어떤 것일까? 이 상황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선은 무엇일까?”라고요.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의무와 책임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만 물어봅니다. ‘내게 좌우되고 내가 ...  
137 생명과 기쁨의 길! (4)
[레벨:6]achreios
7014   2017-04-05 2017-04-10 09:11
+. 평화 우리는 ‘모든 시련은 신망애 3덕에 대한 시련’임을 살펴봤습니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이제 시련을 긍정적으로 헤치고 나가기 위한 태도를 살펴봅시다. 먼저 시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직면한 상황을 거부하면서 반항하는 한 전진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나 중병을 받아들이는 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숙명론이나 체념이 아닌 동의와 승낙인 수용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시련을 받아들였다면 그 다음 좋은 물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시련의 때를 만나면 우리 내면에서는 수천 가지 물음이 솟구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도대체 내가 하느님께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지? 하느님께 항상 충실했는데 우울증에 빠진다는 게 말이 돼?...’ 가장 빈...  
136 생명과 기쁨의 길! (3)
[레벨:6]achreios
7300   2017-03-28 2017-03-30 15:29
+. 평화 ③모든 시련은 ‘사랑’에 대한 시련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가끔 기도에 대한 마음이 식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의 시련은, 계속 기도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나의 취향이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기에!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 자유롭고 더 참된 사랑으로 정화시켜 주는 것이기에 시련의 때에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인이 젊고 귀엽고 상냥하고 유쾌하고 여러분의 모든 기대에 부응하기에 부인을 사랑했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녀가 가끔 심한 까탈을 부리고 주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계속 그녀를 사랑할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동...  
135 생명과 기쁨의 길! (2)
[레벨:6]achreios
6716   2017-03-21 2017-03-23 17:32
+. 평화 ②모든 시련은 ‘희망’에 대한 시련입니다. 힘든 시간에 놓이면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헤쳐나가지? 이 고통스러운 시간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육체적 건강을 잃는다거나/ 나의 기둥이자 버팀목이었던 사람이 사라지거나 나를 배신합니다. 경제적인 원천, 우정, 능력, 학위 등 평소 내가 기대었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나아가 내가 의지했던 제도의 결함을 깨닫게 되거나 이상적이라 믿었던 부부나 공동체가 사실은 나약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이런 시련을 맞으면 우리의 마음은 약해지고, 이런 나약한 감정이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무엇에 의지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자신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134 생명과 기쁨의 길! (1)
[레벨:6]achreios
6837   2017-03-14 2017-03-17 09:00
+. 평화 언젠가 이런 물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하느님을 신뢰하기 힘든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도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신뢰가 부족해서 그러신 게 아닐까요?... 예수님의 이 외침은 신뢰의 부족이 아니라, 시편 22편의 첫 구절로서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당신의 신뢰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 시편은 크나큰 비탄으로 시작해서 너무나 멋진 희망의 말로 끝맺습니다.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시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주신다. 세상 끝이 모두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민족들의 모든 가문이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시편 22,25.28) 인...  
133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당기는 태도들!
[레벨:6]achreios
6625   2017-03-08 2017-03-08 13:23
+. 평화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당기는 태도들은 겸손, 신뢰, 기도, 사랑, 그리고 감사입니다. 이 태도들 중에서 은총을 가장 잘 끌어당기는 것은 ‘감사’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은혜에 감사드릴 때면, 하느님께서는 감동을 받아 서둘러 우리에게 10가지 다른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또 다시 감사한 마음을 토로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은총을 쏟아부어 주세요!” 하느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 삶에 새로운 은총을 끌어당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사 때문에 더 자비로워지면서 ‘변화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정화되는 것이지요. 감사하는 태도는 마음을 정화하도록 해줍니다. 좌절, 슬픔, 자신에 대한 집착, 고통, 불만족, 불만 등에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여기...  
132 작은 성령강림축일!
[레벨:6]achreios
6528   2017-02-28 2017-02-28 17:09
+. 평화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해하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온유하신 아버지에 대한 깊은 경험을 포기하고 있으니까요. 올바른 환경에서 제대로 경험한 고해는/ 하느님의 진짜 얼굴, 한없는 사랑을 재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고해를 잘 하려면/ 진심으로 뉘우치며 지은 죄를 인정하고, 자기 합리화나 타인에 대한 원망을 거두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정상을 참작하는 수천 가지 이유를 찾는 대신에 이렇게 말하십시오. “진짜 죄를 지었으며, 마음은 딱딱하고 오만했으며, 이웃을 멸시했고, 제 기쁨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켰고, 하느님을 잊었습니다.” 등 자신이 깨달은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잘못에 대한 지정한 뉘우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뉘우침이 얼마나 참된 것인지는 감정보다는 회개하려는 ...  
131 우리 신뢰의 근거?
[레벨:6]achreios
7090   2017-02-21 2017-02-21 10:44
+. 평화 우리의 신뢰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어야 합니다. 삶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선을 실천하고, 착하고 덕망 높은 사람이고, 그래서 하느님을 크게 신뢰합니다. 그러다 예를 들어, 나 자신에게 엄청난 모욕이 될 오류에 빠져 힘든 시간을 겪게 됩니다. 아니면 잘못된 결정을 하는 실수를 범하거나... 이 경우 나는 내 결점과 마주하게 되지요. 그래서 슬픔과 좌절에 빠지고, 하느님께 대한 나의 굳건한 신뢰는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신뢰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힘들 때 신뢰가 사라진다는 것은 신뢰의 기반이 자신과 자신의 업적에 있다는 것이죠. 좌절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정말...  
130 친밀한 우정에 대한 충실성!
[레벨:6]achreios
6929   2017-02-14 2017-02-14 22:56
+. 평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잘하라’ 하지 않으시고, 싫증내지 말고 · 용기를 잃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묵상기도, 개인기도, 그리고 “하느님과 자주 친밀하게 우정을 나누는 것”에 대한 충실성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단언한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묵상기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당장 성인이 되지도 못하고 가끔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 기도로 인해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넘어질 때마다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본당 공동체나 우리 자신을 위해 꾸준히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특히 교회에 더 많은 성체조배실이 생기기를 청합시다. 장담하건대, 이것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영적 · 사회적 쇄신은 기도의 쇄신으로 ...  
129 확실하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1
[레벨:6]achreios
7628   2017-02-07 2017-02-15 18:00
+. 평화 불같은 열정은 하느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일까요?...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은 제가/ 작고 가난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맹목적으로 희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 유일한 보물이예요." 이 몇 마디는 정말 중요합니다. '겸손과 신뢰' 바로 이것이 확실하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당기고, 그분의 자애로움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길은 작음의 길, 좀 더 근본적으로는 신뢰의 길입니다. 이것이 영적 어린아이의 가장 심오한 특징이지요.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의심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뒤로 물러서서, "뛰어 내려!" 하면 아이는 뛰어내릴 것입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잡아줄 지, 그대로 떨어지도록 내...  
128 모든 소명의 기초?
[레벨:6]achreios
6828   2017-01-31 2017-01-31 22:00
+. 평화 소화 데레사는, 모든 소명의 기초가 되는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불타오르게 하신 사랑이라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사랑이 식어버리면 선교사도, 설교자도, 순교자도 더 이상 없겠지요. 이 점은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입니다. 병들고 나이 들고 교회에 봉사할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이 없고 쓸모 없다고 느낄 때,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꼭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학위 능력 활동도 물론 유용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순수한 사랑의 사소한 행위는 다른 모든 업적들을 합한 것보다 교회에 더 유용합니다." 우리는 개인적 한계나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 부엌, 욕실, 사무실에서 우리 모두 사랑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  
127 하느님의 사랑법!
[레벨:6]achreios
7515   2017-01-26 2017-01-26 10:12
+. 평화 하느님의 사랑은 지극히 현명하시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고 몰두하는 한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책략을 쓰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만 자신을 끌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가련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 - 토마스 머튼, <칠층산> 중에서.  
126 사랑의 혁명가!
[레벨:6]achreios
7523   2017-01-23 2017-01-23 17:59
+. 평화 이사야서 66장은, 진정 성인이 되고 싶지만 너무 가난하고 불완전한 자기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하느님께 다가가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비난하실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위로해 주십니다.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66,12-13)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라. 약하다고 기죽지 마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의 가난을 장애와 걸림돌로 여기지 말고 은총으로 받아들이라!' 이 모든 것이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선입니다. 이 시선은, 나약하고 가난한 우리 자신과 화해하는 사랑의 혁명입니다. 우리는 모두...  
125 이런 사목을 꿈꾸며 imagefile
[레벨:21]하늘바라기
20957   2012-05-07 2012-05-07 22:15
-- 본 글은 벨리 코리안 뉴스 잡지 2012년 5월에 실린 기사입니다.  
124 사목자로서의 생각
[레벨:7]BULL
14209   2011-09-30 2012-03-27 20:49
오랫동안 Lucas 생각을 썼다. Lucas 생각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이 공동체를 사목하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바랐던 바램들이다. 사실 어떤 글이라도 서로 떼어서 보면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꼬투리를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들이 우리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구원으로 가는 작은 징금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생각(生覺)은 자신이 살아있음의 표시이고, 신자로서의 생각을 놓지 않아야 내 길을 바로 갈 수 있는 것이다.  
123 우리가 가야 할 길
[레벨:7]BULL
16345   2011-09-14 2012-03-27 20:49
성화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깨어있음’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가야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기도를 해야만 내가 갈 길을 올바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신앙공동체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기도를 하고, 성화의 삶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세속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목을 하다보면 많은 의문이 든다. 사람이 바뀌고자 신앙생활을 하는데, 사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려는 사람은 조금만 밀어주어도 잘 가는데, 거꾸로 가는 사람을 억지로 밀어서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벽한 공동체는 없다. 다만 완벽한 공동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122 내가 생각하는 사목 1
[레벨:7]BULL
16477   2011-09-10 2012-03-27 20:49
사목의 목적은 신자들의 성화(聖化)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비록 우리가 불완전하고 나약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면서 자신을 변화시켜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목은 내가 맡은 공동체의 모든 신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야만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는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다. 그러기에 불협화음, 잡음, 갈등, 다툼이 있을 수 있다. 공동체에 속한 우리 각자가 구원의 길,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때, 극복되어지는 것이다.  
121 내가 믿는 하느님 2
[레벨:7]BULL
15704   2011-08-28 2012-03-27 20:49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느님이시고 또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우리는 구원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태도,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 궁금한 것은 왜 신앙인의 삶이 서로 다른가? 하는 것이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가르침을 듣고, 같은 길을 걸어간다면, 어느 정도 비슷한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가 만든 하느님, 나에게 유리한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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