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 천주교회(ST.PAUL CHUNG HASANG KOREAN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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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260 대림 3 주일
[레벨:8]BULL
12754   2008-12-15
"우리 공동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매 주일마다 미사에 나오는 신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마음의 평화? 만사형통? 영원한 생명? 저마다 원하는 것이 있겠지요! 모두가 힘들고 어렵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간절히 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을 청했으면 합니다.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희망이며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이 이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Lucas 생각  
259 대림 4주일 - 진정한 겸손
[레벨:7]BULL
13048   2008-12-18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재물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때에 재물에 대한 마음은 더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재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주 재물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재물은 나쁜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이다. 문제는 그 재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은 가난할 수가 있다. 가난한 마음이란 오직 하느님만을 최고의 가치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재물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가난한 마음이다. 이것이 포기의 마음이며, 의탁의 마음이다. 성모님이야말로 ...  
258 성탄
[레벨:7]BULL
12745   2008-12-24
금관의 예수는 우리가 잘아는 노래입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관이 금으로 장식한 금관으로 바뀔때, 예수님 수난의 의미는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화려한 침대가 아니라, 초라한 외양간의 구유에서 나셨다는 것을 잘 묵상해야 함니다. 구유는 낮음을 의미하고, 비움을 의미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 이것이 성탄입니다. 초라하고 더 이상 낮춤이 없는 구유를 보면서 그 구유에 오신 구세주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257 인생푸념
[레벨:7]BULL
12357   2008-12-27
“신부님은 좋으시겠어요?”라고 한다. “왜요?”하고 묻는다. “혼자 사니까요!”부 럽다는 듯이 말한다. ‘한바탕 했구나!’라고 짐작한다. 또 묻는다. “신부님은 스트 레스 받을 일 없겠네요!”“왜요?”하고 묻는다. “혼자 사니까요?”생각없이 말한 다. 이제는 쥐어박고 싶다. 혼자서 살아도, 둘이서 살아도, 사는 것은 매한가지다. 때로는 혼자서 사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참 부럽다는 부부를 많이 만나고 싶다. - lucas 생각  
256 냄새
[레벨:7]BULL
12631   2009-01-03
저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 다르다.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냄새가 다르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풍기는 냄새가 달라지는 것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가 하는 일이 달라도 똑 같은 냄새가 나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는다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한다. 향기는 우리의 삶에서 타인의 삶으로 옮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향기를 내고 있는가?  
255 수도(닦음)
[레벨:7]BULL
13284   2009-01-10
무엇이든지 많이 닦으면 빛이 난다.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나가는 작업이 다. 자신이 없어지도록 닦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지금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인 진리의 말씀을 닦고 있 다. 진리를 닦으면 거기에서 덕이 나온다. 가장 큰 덕은 애덕이다. 나에게 애덕이 없 다면, 나는 지금 진리를 닦는 작업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변덕만 있다면 도대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가? 지금 나 무엇을 닦고 있는가?  
254 바램
[레벨:7]BULL
13166   2009-01-20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는데도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성당에 열심히 다녔는데도 집안에 우환이 많다고 한다.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왜 우리 아이가 대학에 떨어졌냐고 한다. 이런 신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 마다 ‘성당’을 ‘절’로 잘못알고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진정 하느님께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253 부르심 1
[레벨:7]BULL
13695   2009-01-25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단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부르심에 응답을 하였 다는 것이다. 성당으로, 신앙으로 오게 된 계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 그리고 이 자리에, 지금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르심에 합당한 응 답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목적없는 부르심은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응답하고 있 는가? 적어도 ‘저 사람은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는가?’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252 바친다는 것
[레벨:7]BULL
13058   2009-02-01
사람들은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강하다. 그래서 자기 것을 내어놓는 것이 쉽 지 않다. 그런데 신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내어놓겠다는 약속이다. 그것도 일 부가 아니라 온전히 내어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늘 갈등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어놓아야 하는가? 다 내어놓고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 친다는 것은 그냥 말 그대로 바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또 무 엇을 하느님께 바치는 삶을 살고 있는가?  
251 성장
[레벨:7]BULL
13262   2009-02-09
미국도 한국도 요즘 가뭄이라고 한다. 식물은 수분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가뭄은 식물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다니기에 불편해도 비가 고마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신앙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나의 일부였던 신앙 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 신앙의 성장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장한다. 하 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용기로 성장한다. 또한 신앙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성 장한다. 모두가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어려움과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신앙은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 앙도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250 열성
[레벨:7]BULL
13039   2009-02-15
성당에서 열성적인 신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협조적이 다. 그런데 가끔씩 열성적인 신자들의 모습에서 뭔가 부족한 점을 느끼게 된다. 처 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부족한 것 은 믿음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에게서 믿음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만,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 안으로 그대 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세상일을 열심히 하듯이 교회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 러나 믿음이 없는 열성은 위험하다. 열성이 인정받지 못할 때, 자신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믿음이 없는 열성은 순명도 없고, 사랑도 없게 된다. 열성은 믿음을 바탕으로 할 때,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lucas 생각  
249 포기
[레벨:7]BULL
13165   2009-02-22
아프리카에는 원숭이를 잡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입구가 아주 작은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넣어 놓는다. 그러면 원숭이는 사람이 없는 틈 에 항아리 안에 손을 집어넣고 음식을 꺼내려고 하지만, 움켜진 손은 입구가 작은 항 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달려오 지만, 원숭이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달아날 수가 없다.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을 잔뜩 움켜진 손을 펴면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가 있게 되고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달아날 수가 있는데도 원숭이는 이것을 모른 다. 똑똑한 사람들은 이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 이 이 원숭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아서 영원한 생명을 놓...  
248 예수없는 십자가 2
[레벨:7]BULL
13247   2009-03-02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다.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치욕적인 사형도구가 십자가 이다. 이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박히셨다.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 십 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와 예수님을 따로 생각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십자가만 보이고 거기에 매달리셨던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소위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없 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님을 믿고 따르려는 추종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47 안주(安住)
[레벨:7]BULL
13168   2009-03-09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도전을 피하게 된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를 두려워한 다. 그래서 편안함을 찾고 또 한곳에 정착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안주하려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내가 만든 신앙의 틀 안에서 큰 변화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려고 한다. 신앙생활은 편안할 수가 없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는 체험도 없다. 신앙은 모험이다. 신앙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다. 우리가 매 주일 미사를 시작하면서 참회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지금 새 사람으 로 변화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예 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진 낡은 신앙태도를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46 성전(聖殿)과 공소(公所)
[레벨:7]BULL
12995   2009-03-14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아직도 공소가 많이 있다. 매주일에 신부가 가기도 하지만, 격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공소에는 미사를 드릴 수는 있지 만, 성체를 모셔 놓지는 않는다. 공소에 있는 신자들은 주일미사를 대신하여 공소예 절을 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본당과 공소의 차이는 성체를 모신 감실이 있느냐, 없느 냐로 구분되기도 한다. 성전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다.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 성전이 라면 우리 자신들도 성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산다면,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면 우리 자신이 성전이다. 내 안에는 진정 하느님이 계시는 가?  
245 당당함
[레벨:7]BULL
13412   2009-03-21
자기반성이 없는 신앙인은 늘 당당하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 하 느님은 자비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에 다 이해하실 것이라고, 또 그것을 당당하게 요 구한다. 내가 빛이 아니라 어둠을 걷고 있는 이유도 하느님께서는 다 아시고 이해하 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희망은 나의 착각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아니라, 오로 지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이다. 그 당당함에 할 말이 없다. 하느님도 그 당당함 에 기막혀하시는 것은 아니신가? 도대체 누가 하느님인가?  
244 섬김
[레벨:7]BULL
13678   2009-03-29
성당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직책을 맡아왔다고 한다. 나름대로 아는 것도 많다. 흔히 열심한 신자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이야기를 오래할수록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신앙인으로서의 향기가 없다. ‘자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을 해 도 ‘내’가 한 것이고, 결과가 좋아도 ‘내’가 열심히 한 덕분이고, 신앙공동체 안 에서의 모든 일이 모두가 똑똑한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앙공동체 는 섬김의 공동체이다. 그런데 ‘나’를 내세워서는 섬김이 될 수 없다. 섬기기 위해 서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예수님을 섬 길 수 있고, 이웃을 섬길 수 있다. 섬김이 없으면 봉사도 사랑도 없다. 나는 무엇하 는 사람인가?  
243 그 길
[레벨:7]BULL
12782   2009-04-04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간다고 한다. 그 길은 구원을 위한 길이다. 이천년 전 예수님께 서 그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걷고자 한다. 그런데 그 길이 무슨 길인지를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 길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길인 것으로 착 각하는 것은 아닌가? 구원을 위한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세상과는 거꾸로 가는 길이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을 버리는 길이다. 이것을 모른다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님께서 가신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242 부활
[레벨:7]BULL
13345   2009-04-13
부활을 기뻐한다고? 부활이 기쁜 이유가 무엇일까?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왜 내가 기뻐하는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들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 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우리 안에 미움이 있다면, 그로인해서 서로가 반목한다면, 서로 만나기가 불편하다면 내 마음 안에는 아직 부활의 기쁨이 없는 것이다. 부활하 신 예수님을 서로의 만남에서 찾아야 한다. 사랑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부활하신 예 수님을 찾아야한다. 우리 공동체에는 부활이 왔는가? 그렇다면 이웃형제들의 얼굴을 보자.  
241 평화
[레벨:8]BULL
13639   2009-04-19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 가정안에서도 내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없는 평화를 원한다. 이 평화는 힘에 의해 주어지는 평화가 아니다. 우리 공동체는 그러한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갈 때만이 얻을 수 있는 평화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맛보고 있는가? 모두가 자기를 놓을 때, 예수님의 평화를 맛볼 수 있다. 그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모두가 자기를 놓고 예수님을 따라서 살려고 할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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